《이맹뿌도 살아 있다》-16

[16화] 우리는 그렇게, 은행원이 되어갔다

by 달구언니



1. 입소
연수원 입소 날, 우리는 처음 정장을 입고 모였다.

면접 때는 정장 입지 말라고 했던 회사가,

이번엔 정장을 입으라고 했다.


대절버스를 타고 연수원으로 함께 이동했다.

모두 어색했다.

우리 는 인원이 많아 여러 개의 반으로 나뉘었고,

또 조로 나뉘었다.

당시엔 MBTI가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인성검사를 했었고, 그걸로 조를 나눈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잘 맞았다.

같은 조 동기들, 다들 비슷했다.

성실하고, 조용하고, 자기 몫은 확실히 해내는 사람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인상은 거의 그대로다.

연수원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외출도 거의 없었고, 주말에도 남아 있어야 했다.

카페도, 매점도 없었다.


대신 교육팀에서 매 시간 과자와 커피를 챙겨줬다.

밥은 맛있었다. 아침엔 간단한 체조,

9시부터 6시까지 수업, 시험, 자율학습.

규칙적인 생활이 누군가에겐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잠이 많았고,

평가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과락만 피하면 되니까.

그래서 정해진 것까지만 하고 푹 자곤 했다.

공부만 한 건 아니었다.

조별 레크리에이션, 전체 행사도 있었다.

고객 응대 시뮬레이션도 했고,

마지막 날엔 연수생 전체가 개사한 노래를 불렀다.

우리 다 같이 잘 버텨보자던 가사처럼

우리는 아직도 버티고 있다.


아침마다 울리던 모닝콜 노래는

지금도 들으면 연수원이 생각난다.

몇 년 만에 다시 연수원에 갔을 때,

혼자 그 노래 들으며 추억에 잠긴 적도 있다.

연수원에서 ‘대체부부’가 생기기도 했다.

은행 내에서 쓰는 말인데,

같은 은행 커플이 결혼하면 대체,

타행과 결혼하면 교환이라고 한다.


연수원 때부터 썸을 타고 있었다.

나는 몰랐지만.


연수 끝나고도 우리 조는 꾸준히 만난다.

연말이면 꼭 한 번은 얼굴을 본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진짜다.

사령장 수여식 날.

우리가 발령받을 지점은

사령장을 열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 비밀이었다.


연습도 여러 번 했다.

임원들이 다 와서 지켜보는 자리였기에,

표정관리도 연습했다.

‘혹시 구린 곳에 가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내 마음은 조용히 떨고 있었다.

경기권에 살고 있었고,

당연히 근처 지점을 기대했다.

희망지점을 적긴 했지만,

그건 참고사항일 뿐이라 했고.

드디어 내 차례. 상장을 열었고,

‘서울 00’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기업들이 밀집된 그 지역.

익숙하지 않은 곳.

어안이 벙벙했지만 표정은 유지했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담담했던 것 같다.

사령장엔 지점 담당자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보통은 지점장이 연수원으로 데리러 오고,

꽃다발도 주고, 사진도 찍고 그랬지만, 우리는 달랐다.

지점으로 바로 오라고 했다.

영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해도 안 받으셨다.

다른 동기들은

지점에서 ‘밥 먹고 천천히 와’라는 말도 들었다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떨면서 갔다.


나중에 들으니, 모르는 번호라서 안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친한 부장님이 되신 분이다.

아직도 그 얘기 꺼내면 웃는다.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구두 신고,

수동 회전문 앞에서 멍하니 기다리다 문에 낑긴 나.

그게 내 첫 출근이었다.


연수를 잘 받았다고 연수비가 입금됐는데,

장기 미사용 계좌라 ATM 출금이 안 됐다.

발령받은 지점에선 일하러 온 날인데

창구 이용은 눈치 보였다.

결국 옆 지점까지 가서 제신고.

운 좋게 지점장님이 좋은 분이셔서

“첫날은 가서 쉬어” 하셨다.

그 말 듣고 옆 지점 가서 카드 만들고 돈을 뽑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만 원짜리 신권으로

연수비를 싹 다 뽑아서 엄마께 드렸다.

근데 그 후, 돈이 없어서 용돈을 다시 받았다.

체크카드만 쓰던 대학생의 현실.

그렇게, 우리는 연수원을 나왔고,

각자의 자리에서 은행원이 되어갔다.



다음 편: [17화] 나도 언젠가,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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