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본점에서, 오늘도 나는 버티고 있다
1. 몇 해가 흘렀지만, 여전히 그 자리
본점에 온 지 몇 해가 지났다.
시간은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늘 “상황이 아직은 어렵다”는 말.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기대도, 말도 조금씩 접게 됐다.
그렇다고 마음이 괜찮아지진 않았다.
익숙함은 늘, 지겨움과 허무함을 데리고 오니까.
나는 내가 맡은 일에 만족하고,
그 일을 계속 디벨롭해 나가는 걸 좋아했다.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지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너의 업무를 누굴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오히려 나에겐 상처가 됐다.
(그걸 좋아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뜻이었으니까.)
2. 다시 돌아온 여름, 또 한 번의 개편
그리고 또 7월.
여느 때처럼 인사이동 시즌이 다가왔고,
이번엔 우리 팀에서도 대상자가 있을 거라는 말이 돌았다.
팀장님은 조용히 몇 명을 따로 면담하기 시작하셨고,
내 이름도 그 안에 있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후보가 세 명.
그동안 연관된 업무를 맡아온 사람들 중심으로,
① 나
② 나와 함께 들어온 남자 과장님
③ 올해 새로 온 여자 과장님.
많은 이야기 끝에 내 의사를 물으셨고,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팀장님은 이렇게 정리하셨다.
“00 씨는 마음이 반반인 거지?”
3. 반반인 마음,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진짜
사실 나도 혼란스러웠다.
지금 팀이 너무 좋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다 좋아서
이대로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지만,
업무적으로는 정말 많이 고민해 왔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이 팀이 좋고, 여기서 더 해보고 싶은 것도 많지만
지금의 업무만 계속하게 된다면
제 역량을 다른 방식으로 써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팀장님의 판단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도 마음이 계속 남았다.
결국 팀장님께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 “저는 우리 팀이 좋고, 본업에 더 애정이 있습니다.
지금 팀에서 본업에 가까운 업무를 더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걸 이해합니다. 어떤 결과든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게, 진심이었다.
4. 어디든, 가면 잘해보자. 남으면 더 잘해보자
새로 간다는 팀도 나쁘지 않다.
팀장은 일 잘하는 차장님이 오신다는 얘기가 돌고 있고,
멤버 구성도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이렇게 정리 중이다.
가게 되면, 가서 잘해보자.
남게 되면, 더 잘해보자.
흔들리는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나는 또 나를 붙잡고 있다.
5. 말해보는 사람이 된다는 것
예전 같았으면
이번에도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니까.
그런데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진짜 처음으로
내 마음을 말해봤다.
그게 정해진 결과를 바꾸진 않겠지만,
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금은 후련했다.
본점에서, 오늘도 나는 버티고 있다.
그리고 어느 방향이든,
나는 또 내 자리에서 시작할 준비를 한다.
다음 편: [부록] 신입에게 전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