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급여와 내 불안의 상관관계
남편의 급여가 세 달치 밀렸다. 남편은 목수로 일하고 있는데, 직업 특성상 급여가 일정한 날에 지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매달 한 번씩은 받아왔기 때문에 급여가 그만큼 밀린 걸 감지하지 못했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모자라게 됐을 때, 남편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반장이 급여를 주기로 한날 아무 연락도 없자 마음이 급해지고, 그렇게 또 급여 날짜는 미뤄지고, 나는 또 남편을 괴롭히고, 그런 날들의 연속. 남편은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웬만해선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는 남편은 이번에도 태연해 보였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 때문에 더 힘들었다.
불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일 원 한 푼 없는 것도 아니고, 염치 불고 하지만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려도 될 일이었다. 아마 내가 정말로 두려웠던 건 엄마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게 될까 봐 였는지도 모르겠다.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아빠와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 하던 엄마.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서 이제 겨우 나에게 여유가 생겼는데,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 생계를 걱정하며 돈 벌 궁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약속한 날보다 1주일여 뒤에 밀린 급여 중 일부가 입금됐다. 입금 액수를 보고 남편도 나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다음 달은 해결이 되겠지만, 그다음 달 또 그다음 달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어떻게든 채워지겠지. 무슨 수가 있겠지 하며 마음을 다스렸지만,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조차 두려웠다. 그리고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내 상황에 맞는 일자리였고 매일 가는 것도 아니어서 큰 부담이 없었다. 퇴근길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급여를 받았을 땐 액수와 상관없이 성취감도 느꼈다. 하지만 간혹 아무 이유 없이 내 모습이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구나 하고 나 자신을 꾸짖는다.
남편은 반장과 일을 그만하기로 했다. 예전엔 반장이 구해온 일을 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젠 계약부터 작업까지 모두 남편의 몫이 되었다. 다행히 남편을 포함해 4명의 팀원이 같이 그만뒀고, 이전에 반장과 일했던 거래처에서 바로 남편 쪽에 일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첫 번째 공사가 끝난 후, 거래처에서 말이 바뀌었단다. 자기네들이 갖고 가는 수입이 별로 없어서 인테리어 팀을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남편은 두 번째 공사를 하려고 이미 2주가 넘게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남편과 함께 했던 2주. 마냥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늘 마음 한구석을 돌덩이가 짓누른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부족한데, 남편은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데, 이거 사자, 저거 사자, 하는 이야기들은 변함이 없다. 이해는 간다. 남편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맘 편히 쉬고, 놀고, 쓰는 시간들도 필요할 텐데. 그런데 자꾸만 돌덩이가 무거워진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내쉬던 한숨이 생각났고, 그게 버릇처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참고 참다가 터지는 한숨이라는 걸 알았다.
남편은 구직 카페에서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모든 짐을 남편에게만 지우고 싶지 않은데, 자꾸 남편을 다그치게 된다. 3~4일 정도 하는 공사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는데, 하루 일하고 오더니 공사현장이 너무 엉망이라 못하겠다고 했단다. 같이 일하러 갔던 동료도 혀를 내둘렀다고. 나는 그쪽 일을 전혀 모르니, 오죽했음 그랬을까 하고 넘겨야 하는데 또 돌덩이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반장과 헤어지고 일을 했던 L거래처에서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왜 자꾸만 일을 하고, 돈을 달라고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 걸까.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냐고, 나는 이런 불안정한 삶이 너무 두렵고 싫다고. 하지만 남편은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이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계속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 되어야 될 때가 아니야.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다고!’라고 생각했지만, 쏘아붙일 힘이 나지 않았다. tv를 보면 그런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일반인 부부 인터뷰 중에, 자신이 힘들었을 때 배우자가 아무 내색 않고 견뎌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 나도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하니까. 그런데 자꾸 내 문제로, 돈 때문에, 불안한 앞날 때문에 이 시간을 묵묵히 견뎌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힘들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주 2일에서 주 3일로 근무시간이 늘어났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파트타임 보조교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다. 수입이 예전보다 늘어나긴 했으나, 그 일을 하기 위해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을 따지고 보면 대단히 도움이 되는 액수도 아니었다. 그만둔다고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몸이 힘든 걸 선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여유가 주어진다면 겨우 욱여넣었던 두려움이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올 것이 뻔했다.
모든 것이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내 고생을, 힘듦을, 어려움을 알아주길 바랐다. 아침에 유독 느긋해지는 아이를 겨우 등원시키고 시간 맞춰 일터에 도착했을 때, 하루치의 노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주말에도 나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할 때, 피곤하지만 해야만 하는 집안일을 해냈을 때, 배달음식 대신 내 손으로 밥상을 차려냈을 때, 그럴 때마다 누가 칭찬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자기 연민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오래전,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짐이 꽤 무거워서 내가 다 들겠다고 우겼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면서 말했다. ‘나는 면역이 돼서 괜찮다.’라고. 이토록 무거운 시간들이 지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엄마에게 그 짐들이 가볍게 느껴진 건 아닐 거다. 무겁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에게 떠맡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어쩌면 나는 지금과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또 불안해하고 흔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쓰러져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는 짧기를, 한숨을 쉬는 순간들도 지금보다는 적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오는 것들 사이를 묵묵히 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