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려줘

by 이다래

어디에도 내 아이디가 보이지 않았다. 탈락이었다. 지인이 국내 모 도서판매 사이트에서 매달 주최하는 에세이 공모전에 대해 알려줬는데, 주제도 어렵지 않고 마침 쓸 내용이 바로 생각이 나서 몇 날 며칠 공들여 쓴 글을 응모했다. 내 글에 대한 왠지 모를 자신감도 있었지만 떨어지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를 확인하고 난 뒤 잠시 머리가 하얘졌고, 정신을 다잡고 나니 조금은 울고 싶어 졌다. 문득, 예전에 같이 살던 a언니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25살, 편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돼서 신나는 마음이 컸지만, 한편으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게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 보였다. 그러던 차에 열심히 준비해서 발표한 과제에 대해 교수님께 혹평을 들었다. 한동안 둔한 머리로 지냈다. 두세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도 한 문장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책도 안 읽히고, 과제를 제출하는 날짜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내 안부를 묻는 a언니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a언니는 내 마음을 모두 알겠다는 듯 말했다. “너를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비 오는 월요일.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이었다. 공모전 탈락의 충격으로 글쓰기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대신 그 비슷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이를 등원시키고 혼자 서점에 갔다. 에세이 코너에 오래 머물렀고, 고민 끝에 책 한 권을 샀다. 문장은 쉽게 읽혔는데, 내용의 무게는 가볍지 않아서 좋았다. 코끝이 찡해질 만큼 짠한 대목도 있었고, 너무 공감이 돼서 웃음이 터지는 대목도 있었다.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에 센티해질 뻔하다가 ‘좋은 작가 알게 돼서 좋아.’라고 중얼거리며 책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의 sns에 들어가 보니 꽤 오랫동안 글을 써왔고, 글쓰기 이외에도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글을 잘 쓰는 누군가의 작품을 읽으면 그 작가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 글과 비교하고 절망한다. 사실, 과정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작가도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책상에서 보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공모전 탈락 정도는 시작에 불과해 보였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두 번째 공모전 탈락을 맞이했다.


나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부족한 내 모습을 '잘' 지켜봐 주는 거였다. 아마 그건 누구에게나 어려울 거다. 특히 나처럼 약간의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별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두 번째 탈락은 조금 괜찮았다. 바라던 미래는 아니었지만 있는 힘껏 기다려 보는 것. 그렇게 매일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던 내 모습과 조금은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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