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라디오에서 광화문 집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땐 그저 제정신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광화문발 코로나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됨과 동시에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린이집은 휴원에 돌입해 긴급 돌봄을 신청한 아이들만 등원을 한다. 등원아동 수가 적으니 파트타임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던 나는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면 내가 벌 수 있었던 돈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일터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과 퇴근길에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사라졌다는 걸 생각했다.
병원 가는 것도 망설여져서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결막염과 비염을 일주일 넘게 달고 지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에 갔는데, 진료를 받고 나오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집에서는 도저히 써지지가 않아서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라도 찾아보았지만 그것조차 불안해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런 불편들도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영업이 어려운 소상공인, 의료진, 등에 비하면 투정에 불과하다. 이정도 어려움은 누구나 다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버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인이는 매일 집에 있어야 한다. 어린이집 언제 가냐고 물을 때마다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가정보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부쩍 체력이 좋아진 4살 아이와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낸다는 건 쉽지 않다. 만화도 이전보다 많이 보여주고, 낮잠도 많이 재우고, 새로운 장난감을 사들여도 한계가 있다. 활동량도 적은 탓에 아인이는 평소보다 한 시간이상 늦게 밤잠에 들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는커녕 혼자 편하게 쉬는 시간조차 부족하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나를 깨우는 아인이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마주하곤 했다.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가끔 외출을 하기도 했다. 가급적 야외에서 가벼운 산책과 편의점에 잠깐 들르기 정도로.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되는 외출을 하는데도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집 앞 놀이터 정자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자 전체에 테이핑을 해뒀다. 하지만 그 앞에서 몇몇 할머니들이 1인용 의자를 가져다 놓고 삼삼오오 앉아있다. 물론 마스크 없이. 멀찍이서 놀고 있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저 할머니들은 왜 마스크 안 해? 해야 되는데.” 할머니들 뒤로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마스크 없이 외출하는 사람들이, 내 분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완전히 바뀐 일상 앞에서,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마음들이 자꾸만 툭툭 터져 나온다. 거칠기만 한 그 마음들은 초가을 선선한 바람에도 사그라질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