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손님들이 남긴 것들에 대해
(2020년 5월의 어느날에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저 멀리서 그가 보인다.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는 어김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는 늘 담배 한 갑과 커피를 산 뒤, 야외테이블에 앉는다. 담배꽁초와 종이컵은 한 번도 본인 손으로 치운 적이 없다. 한두 번은 이런 것도 시급에 포함되어 있겠거니 하고 처리했지만, 아직 커피가 남아있는 종이컵에 담배꽁초가 둥둥 떠 있는 걸 본 이후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내서 말해보기로 했다. "다 드신 건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내 말에 그는 짧게 "네"라고 말한 뒤 정수기 앞으로 가서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진심어린 사과를 바란 건 아니었다. 최소한 민망해하는 표정이라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의 표정은 당당했다.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한편으론 이제 그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다음 근무일에 다시 마주친 그는 평소와 같았다. 똑같이 담배와 커피를 샀고, 똑같이 쓰레기를 테이블에 그냥 뒀다. 이전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이건 나를 무시한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엔 습관처럼 그에게 말했다. 다 드신 건 버려달라고. 전혀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여전했다. 치워달라고 말한 날은 치웠고, 말하지 않는 날은 그대로 뒀다. 어떤 날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짜증이 나서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고 계산을 해줬더니 본인이 먼저 말한다. 치우고 가겠다고. 하지만 그것도 그날뿐이었다.
편의점에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가는 만큼, 진상의 형태도 다양했다. 떠나는 뒷모습에 욕 한번 몰래 하면 해소가 되는 정도의 일도 있는 반면 서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의 일도 있다. 그날이 그랬다. 어김없이 그 손님이 왔다가고, 쓰레기는 테이블에 그대로 있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진상 손님이 찾아왔다. 최근 자주 오던 젊은 남성인데, 편의점에 담배를 맡겨두고 본인이 필요할 때마다 한 개비 씩 달라고 해서 핀다. 그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날은 그냥 편의점 안에 들어와서 실내 테이블에 있는 냅킨을 연달아 뽑아서 코를 풀어댄다.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했더니, 뒤늦게 편의점에 들어와 상황을 눈치챈 그의 누나가 계산대로 물건을 가져온다. 그러고선 포인트 적립 문제로 나를 곤란케 한다. 말투는 물론 까칠하게. 감정이 흔들리는 걸 보여주기 싫어서 일부러 친절한 말투로 대했고, 그들이 떠나고 나자 울음이 터졌다.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그저 평범한 손님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기가 싫어졌다. 나중에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문득 처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날이 생각났다. 한껏 들떠서 점장에게 일을 배우고 있는데, 우연히 편의점에 들렀던 지인이 “언니 멋있어요!”라고 말해줬던 기억. 나 역시 그랬다.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 기특하기만 했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진상 손님들을 대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원래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가. 이런 불쾌한 감정들도 다 급여에 포함되어 있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예고 없이 들른 본사 직원에게 인사를 잘해줬으면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어떤 자리에 있건, 어떤 상황에 있건, 모두가 힘들긴 마찬가지일 거다. 만약 내가 사람을 대하는 일 대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또 다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본은 지키자고. 지금은 이곳이 돈 이외에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뭔가를 가르쳐 주었을지 모른다고. 지금은 그 방법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