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중,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데 배차간격이 길어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버스가 정차하고 있었다. 순간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어서도, 특별히 그 버스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줄어드는 게 좋아서, 그렇게 아낀 시간 동안 뭐라도 할 수 있겠지, 하는 기분이 드는 게 좋아서다. 평소에도 나는 기다림의 시간을 최소화하는 걸 좋아한다. 가령 핸드폰 화면이 느리게 바뀌는 동안 신발을 신는다거나, 국이 끓는 동안 밥을 푸고 수저를 놓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뿐더러 효율적으로 쓰이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더 하거나, 카페에 더 앉아있는 정도로 쓰일 뿐이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는 기다림 때문에 많이도 싸웠다. 느긋한 성격의 남편은 데이트 시간을 정하면 정시에 도착하거나 몇 분, 길게는 30분 정도를 늦곤 했다. 그에 비해 나는 늘 10분 정도 전에 도착.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게 하는 것도 나에겐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데이트는 나의 투정으로 시작한 적이 많았다. 결혼 6년 차인 지금, 시간을 정하고 만날 일이 없으니 그런 문제로 싸울 일은 거의 없다. 간혹 밖에서 따로 만날 일이 있을 땐 여전히 바지런을 떠는 내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최대한 느긋하게 집을 나서곤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게 힘든 일이라고 처음 느꼈던 적은 초등학생 3학년 때였다. 엄마가 학부모 총회 때문에 학교에 왔던 적이 있었다. 수업이 다 끝나기 전에 총회가 끝이 났고, 쉬는 시간에 잠깐 엄마를 만나러 회의실에 갔던 나는 수업이 곧 끝날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수업이 예상보다 길어졌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나는 기다리고 있을 엄마 생각에 애가 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엄마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달려갔다. 하얀 니트에 청스커트를 입은 엄마. 평소와는 다른 불편한 차림이었다. 그리고 양손에 어린 두 동생들. 엄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표정은 지쳐 보였다. 그 장면은 내 마음에 길게 남아서, 떠올릴 때마다 엄마에게 기다리라고 했던 그때의 나를 꾸짖곤 했다.
언제쯤 나는 기다림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평생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려나, 하는 생각들을 하다 보면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나의 조급함으로 누군가가 기다리는 시간이 1분이라도 줄었을 때, 약속시간에 늦은 누군가를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때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적당히 조급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지금의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기. 내가 자라는 모습부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