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에 대한 단상

나의 고질병

by 이다래

결혼을 하고 경기도에 살게 된 동생은 가끔 제부가 주말에 당직을 서는 날 우리 집에 놀러온다. 아인이는 낯을 가리지만 한번 친해진 사람에게는 정을 듬뿍 주는 편이다. 길을 걸을 때도 이모 손을 잡고, 자전거도 이모가 끌게 한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동생을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장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동생이 차에서 내리자 아인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마트까지는 이모가 같이 가기로 한 줄 안 모양이었다. 아인이가 울자 동생도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는지 길을 건너서 계속 손을 흔들어준다. 아인이는 울면서도 “이모 안녕. 이모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겨우 진정이 된 아인이는 “이모가 가서 마음이 안 좋아. 마음이 없어.”라고 한다.


마음을 주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아인이의 그런 모습이 꼭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20대에 2년을 다녔던 회사를 퇴사할 때는 20명 가까이 되는 부서 사람들에게 주려고 손수 샌드위치를 만들고, 편지도 썼던 기억이 있다.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고, 편지가 너무 고마웠다고 따로 연락을 줬던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다녔던 또 다른 회사에서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대부분의 사원이 파견직이었고, 그만큼 퇴사와 입사가 잦았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 이미 1년을 재직하고 있던 A언니는 누구에게도 말을 놓지 않았다. A언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끼리는 다들 말을 트고 지내는 걸 보면서 왜 저렇게 거리를 두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그 회사를 4년 가까이 다녔고, A언니는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1년을 더 다녔다. 나름 A언니와 가깝게 지냈고, 퇴사 이후에도 가끔 만났는데, 절대 말을 놓는 법이 없었다. 물어보지 않아 A언니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그런 짐작만 할 뿐이었다. 헤어짐이 반복되는 게 힘들어서 일지 모른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A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다는 건 너무나 잘 알겠는데, 헤어짐 뒤에 오는 아쉬운 마음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그 마음이 나에게만 있는 것 같아서 슬플 때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나 혼자 슬퍼하는 그 기분이 왠지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떠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을 한껏 표현했을 때, 상대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그것 역시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는 나도 A언니처럼 쉽게 마음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체질상 어려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마음을 다 주고 난 뒤였다. 이놈의 고질병.


최근에 아인이와 둘이서 친정에 다녀왔다. 2박 3일 동안의 시간이 즐거웠는지 아인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결국 기차를 쫓아오며 손을 흔드는 할머니를 보며 아인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다음날 나보다 먼저 잠에서 깬 아인이가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훌쩍였다. 영상통화를 시켜주었더니, 아인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걸 본 할머니도 같이 울음바다. 어김없이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어린 나를 이모네 맡기고 돌아오던 날, 이모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던 엄마. 서울에 올라오고 난 뒤 처음으로 본가에 들렀다가 다시 떠나던 날, 역으로 가기 위해 아빠 차에 타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기어코 백미러로 우는 모습을 보여주던 엄마.


조금은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서울에 올라와 산지, 15년이 다 되어가고, 엄마와의 이런 식의 헤어짐도 수없이 겪어서 이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어짐 앞에서 약해지는 아인이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사실은 나도 표현하기를 멈춘 것일 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훌쩍이며 아인이에게 말한다. “아인아 또 만나자. 어린이집 가서 잘 놀고 또 할머니집에 와.”라고. 그 말이 마치 나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엄마로부터 온 나의 이 고질병이 아인이에게까지 이어졌으니 별수 없다.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질 때까지 안아주는 수밖에. 앞으로도 겪을 수많은 헤어짐 앞에서 아인이는 많이도 슬퍼하겠지만, 참 예쁜 마음이라고, 그러니 맘껏 표현해도 된다고 말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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