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반려질환 비염

by 이다래

언제나처럼 아인이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아인이는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느라 매일 고군분투한다. 불을 켜기도 하고, 내 눈꺼풀을 손수 들어주기도 하고, 온 힘을 다해 내 몸 위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버티는데,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안방 문 열어젖히기다.


우리 집은 어느 정도 웃풍이 있는 편이고, 나는 비염이 심하다. 안방은 바람이 들어올 틈 없이 뽁뽁이를 꼼꼼히 붙였지만, 환기를 생각하면 거실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보니 안방 문을 열면 찬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내 코로 들어온다. 결국 나는 콧물이 만들어지면서 나오는 재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아인이에겐 미안하지만 아침을 먹으면서도 코를 풀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비염약은 다 떨어졌고, 얼마 전 약국에서 급하게 산 약도 다 떨어졌다. 집에 있는 약이라곤 아주 예전에 사둔 독한 비염약뿐이었다. 이 약을 먹는다면 콧물은 멈추겠지만 아주 극심한 졸음과 권태감에 시달릴 거다. 며칠은 졸음 대신 콧물을 감당하는 걸 선택했지만, 오늘은 자신이 없었다. 결국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약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많던 콧물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즐길 틈도 없이 졸음이 밀려온다는 건 더 신기하다. 아인이에게 만화를 틀어주고 소파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역할 놀이를 하자며 자동차 2개를 내 손에 쥐어주는 아인이에게 영혼 없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20대 때야 증상이 심한 기간도 짧았고, 자주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출산을 하다 보니 비염은 머무는 기간도 길어지고, 콧물 외에 다른 증상들도 가져왔다. 몸살과 두통이 함께 오더니, 나중엔 결막염, 잇몸통도 같이 왔다. 그러다 출산 후에는 빈뇨증도 추가됐다. 하지만 이번엔 그 모든 증상이 찾아오는 것보다 기간이 길어지는 게 문제였다. 벌써 세 달째다.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비염은 왜 나에게 왔을까. 왜 나를 선택했을까.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할까. 그런 한탄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비염에 관한 글을 봤다. 배우자에게 심한 비염이 있는데, 콧물을 푼 휴지를 제때 치우지 않아 짜증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댓글까지 보는 것이 왠지 겁이 났다. 나 역시 비염이 심한 시기에는 앉은자리 주변엔 휴지 언덕이 만들어지고, 부지런히 치운다고는 하지만 가끔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스크롤을 내리고 베스트 댓글 3개를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3개 중 2개의 댓글이 ‘비염이 심하면 정말 힘드니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난생처음 네티즌이 고마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아마 비염은 더 심해지겠지. 한여름이 되면 좀 나아지려나. 하지만 금방 가을이 오니 나는 또 휴지 언덕을 만들어대겠지. 그래도 마음만은 괜찮았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나에겐 내 비염을 편들어주는 네티즌이 있으니까. 세상 모든 비염인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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