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분위기

by 이다래

우리 빌라는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20계단 정도 올라야 우리 빌라가 나오는데, 때문에 이사 온 뒤로는 자전거도 한번 못 타고, 아인이 유모차도 접이식으로 장만했었다. 2년 전쯤, 지인이 세발자전거를 물려받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계단 때문에 고민이 됐다. 그러다 우리 집 바로 앞 골목에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떠올랐다. 카페 옆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창고 겸 지인의 자녀들이 쓰는 킥보드나 자전거를 보관해 두는 곳으로 쓴다. 혹시 아인이 자전거도 같이 보관해도 괜찮은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여태껏 잘 사용을 해왔다. 하지만 재개발이 확정되고 주민 이주가 시작되면서 그 카페도 이전을 하게 됐다. 당연히 아인이 자전거도 새 거처를 마련해야 할 상황. 아인이가 워낙에 좋아하던 자전거라 고민했지만 자전거 무게뿐 아니라 부피도 커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인이는 그런 사정을 알고 그런 건지 어쨌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젠 자전거가 재미없으니 다른 동생에게 줘도 된단다. 그렇게 자전거는 무난히 잘 처분했다. 아인이가 좀 더 크면 꼭 두 발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동네에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빈 건물의 출입문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 스티커가 붙었고, 그 스티커는 점점 더 많아졌다. 심지어 어떤 건물은 노란 스티커가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tv에서만 보던 풍경은 아니었다. 이주를 반대하는 주민과 이주를 시켜야만 하는 사람 간의 물리적인 갈등 같은 것들. 너무도 조용하게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놀이터를 지나면 바로 우리 빌라 골목이 보이고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양쪽에 빌라가 늘어서 있다. 골목을 들어서서 첫 번째 빌라를 지나는데, 누군가 빌라에 주차를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때 지나가던 주민이 주차하시면 안 된다고 만류를 한다. 그러자 운전자가 말한다. “여기 이제 아무도 안 살잖아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아직 이사 안 나간 집 있어요.”였다. 그제야 알게 됐다. 그 빌라도 재개발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틀에 한 번은 골목길에 이사 트럭이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알고 지내던 이웃도 아니지만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한 집이 이사를 나가고 나면 빌라 한켠에 오래된 가구나 가전들이 대형 폐기물로 나와 있다. 언뜻 봐도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낡아있다. 낡은 동네도, 낡은 집도, 낡은 가구도 모두 새 걸로 바뀌려는 중이다.


동네 곳곳에는 쓰레기가 쌓인다. 빈 건물의 주차장이나, 건물과 건물의 사이, 놀이터 담벼락 같은 곳에. 간혹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곳에 쌓인 물건들을 살펴보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정작 뭔가를 주워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면 구청에서 나와 한 번에 처리를 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하면 이사 폐기물 외에 주민들의 생활 쓰레기도 쌓이기 때문에 자주 처리를 한다고 해도 역부족이다. 쓰레기 더미들은 이곳이 곧 재개발이 시작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 같다.


사실은, 지금 우리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란스티커도 보기 싫고, 이사 트럭 때문에 길을 조심조심 지나다녀야 하는 것도 싫고, 폐기물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것도 싫다. 하지만 우리 동네가 사라지는 건 더 싫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금세 잊어버릴까 조금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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