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연대기 2편

by 이다래

새벽 4시 반, 쿵쿵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만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됐을지 모를 그 소리는 내가 깨고 난 후, 2~3분 정도 지속되다가 멈췄다. 이어서 사람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났고, 연달아 배수관으로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났다. 모든 상황을 종합컨대, 이런 추리를 할 수 있었다. 윗집 할머니가 바닥에서 마늘을 빻은 뒤, 주방으로 걸어가서 싱크대 물을 튼 것. 그런 생각이 들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소음은 거의 3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되었다.


사실, 층간소음이라는 게 윗집이 아니라 앞집, 또는 아랫집이나 2층 위의 집일 수도 있다기에 윗집에 대한 의심을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윗집에 가서 물어보지 않고, 공동현관에 메모를 붙였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하지만 소용없었다. 며칠 안 나는가 싶더니 다시 시작되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새벽마다 같은 시간에 깨다 보니 소음이 들리지 않는 날도 저절로 깨는 사태가 벌어졌다.


윗집에 대한 미움이 점점 커져만 가던 어느 날, 밤 10시쯤 남편과 거실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을 만큼의 층간소음이 시작됐다. 소음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결국 쌓여있던 게 터졌던 나는 남편에게 사정사정해서 윗집에 올라가 봐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올라가면 말이 좋게 나갈 리 만무하니, 나보다는 훨씬 침착한 남편이 가 보는 게 상황을 해결하는데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윗집에 다녀온 남편이 전해준 얘기는 이랬다. 가봤더니 중년의 남자가 나왔는데 집안은 어둡고 조용하더라는 거였다. 새벽의 소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더니 본인의 가족은 그 시간에 일어나지도 않으며, 평소에 4층이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더란다. 하지만 그 이야길 전해 들은 나의 첫말은 이랬다. “윗집이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소음에 예민해지고 싶지 않은데, 윗집을 미워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러다 문득 예전 신혼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신혼집 화장실에 세면대가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업체에 세면대 설치하는 공사를 맡겼다. 그런데 공사가 잘못됐는지 아랫집에 물이 새서 한쪽 벽면이 젖었다는 거였다. 그 소식을 듣고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랫집에 찾아갔다. 아랫집엔 중년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더니 괜찮다며 도배를 새로 해야 하니 벽지 값 정도만 주면 될 거 같다고 하셨다. 그때 느꼈던 감사한 마음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사실, 그 당시 아랫집 분들은 매일 저녁 늦게까지 tv를 큰소리로 틀어두시는 통에 내가 아랫집 tv를 보는지, 우리 집 tv를 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해서 이른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남편에게는 때때로 그 소음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랫집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던 이유는 아랫집에 먼저 보여준 아량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다. 처음 이사를 왔을때, 윗집 할머니는 평소에는 없었던 층간소음 항의가 두 번이나 이어지자 짜증이 났을 거고, 나는 임신 초기 호르몬 변화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기 때문에 이해심이 넓지 못했다. 모든 것은 층간소음에 약하게 지어진 건물 탓이지만 이제 와서 건축주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서로를 탓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때의 미움을 계속 키워온 게 후회가 된다. 새벽의 소음은 윗집이 아니었지만, 아니라는 말에도 의심을 쉽게 거두지 못했던 건 그때의 미움 때문이니까. 물이 새서 한쪽 벽이 다 젖어도 이해해주었던 아랫집 사람들처럼 나도 그런 이웃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윗집이 소음이 아닌 다른 부분을 건드렸다면 좋은 이웃이었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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