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추게 한 것에 대하여
“올해 밀가루, 계란 던지기는 금지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졸업식에 날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쓴 졸업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풍습이 안전사고나 비행, 심하면 폭력행위로도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금지를 한다고 했다. 내심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쓰고 사람들 시선을 받으면서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나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같은 동아리 친구가 내 마음을 부추겼다. 계란과 밀가루까지 준비해오겠다는 친구.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한참 뒤, 나를 포함해 5명 정도의 친구가 학교 강당 앞에 모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구석진 곳도 아니었고, 심지어 교무실에서 나오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장소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친구가 밀가루를 꺼내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곳엔 우리만 있는 것처럼 신나게 의식을 치르던 중,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내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과장 선생님이었다.
가끔씩 호랑이나 사자가 나를 공격하려는 꿈을 꾸곤 했다. 다행히 공격 직전에 꿈에서 깨곤 했는데,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내가 맹수에게 쫓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수없이 반복해온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맹수에게 잡히지 않을 어떤 좋은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우리를 향해 뛰어오던 학생과장의 모습이 상상 속의 맹수 같았다. 친구들은 학교 뒷산 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친구들을 따라가다가 학생과장이 내 뒤를 거의 다 쫓아온 걸 알게 된 순간 다리가 멈춰버렸다. 학생과장은 나에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뒤, 다른 친구들을 쫓아갔다. 나는 학생과장이 친구 한 명의 팔뚝을 붙잡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의 공포가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서 그 뒤에 내가 무슨 벌을 받았고, 친구들이 나에게 어떤 원망을 쏟아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끔 그때를 떠올려도 내가 왜 도망가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잡히는 것보다 더 무서울까. 그러던 중 sns에서 육아와 관련된 웹툰을 봤고, 나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각자의 감정에 매몰되어 고성이 오가는 상황은 우리 아이에게는 벗어나고픈 위기의 상황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은 아이가 자기 안에 있는 가장 작고 힘없는 자기와 직면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무서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두려운 일이 생겨도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거예요.”
출처: 인스타그램 @hi_to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