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부가 된 시간
10년 전쯤, 나는 이미 독립해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고, 동생은 여전히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출근길에 동생에게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전날 밤, 아빠가 엄마에게 화를 내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쿵쿵 하는 소리가 났단다. 동생이 안방 문 앞에서 그 소리를 듣다가 어떤 의심이 들어서 문을 열어보니 엄마가 몸을 웅크린 채 엎드려있고, 아빠가 그런 엄마의 등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있다는 거였다. 놀란 동생이 아빠를 말렸고, 아빠는 더 흥분해 동생의 뺨을 때렸다고 했다. 동생의 메시지는 나를 그 날, 그 순간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상상 속 나는 가만히 서 있다. 엄마와 동생이 울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날 아빠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사소한 일로도 엄마에게 화를 내곤 했다. 국이 싱거워서, 자는데 시끄럽게 해서, 화장실 휴지를 채워놓지 않아서 등등. ‘등등’이라는 두 글자로는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중 이해가 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아빠는 본인의 분이 풀릴 때까지 엄마를 붙잡아두고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앞으로 엄마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욕설이 나오기도 하고, 간혹 엄마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런 밤이 시작되면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내가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되면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였다. 아빠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베개로 귀를 틀어막기도 하고, 있는 힘껏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옆에 누운 동생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동생이 깨어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내 마음이 더 무너질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숨죽이고 있는 것 밖에는.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나의 일부가 되었다. 학생과장이 나를 쫓아오던 순간에 내 다리를 멈춰 세운 건 내가 아니었다. 두려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지. 가만히 누워 그때를 생각한다. 나를 붙잡는 무엇도 없었다면 나는 아마 친구들과 열심히 도망쳤겠지. 그저 스릴 있다고만 생각했을 거다.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깔깔 웃었을지도. 그런 순간들이 아깝다. 나를 멈추게 한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즐길 수 있었던 순간들. 그리고 스스로를 비겁하고 용기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했던 순간들도.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위기 속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고, 다만 멈추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만 기억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일부가 된 시간들이 깨지지 않을까. 나는 정말 멈추고 싶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