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꽃이야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 남편, 아인이와 함께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들렀다. 내가 한참 놀아주다가 남편과 바통터치. 벤치에 앉아서 아인이와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있는 내 또래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육아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인 것 같았다.
“***네 딸은 유전자가 세더라.”
“걔는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어야 해.”
“맞아 맞아.”
“***네 딸은 어떻고.”
“걔는 나중에 수술해야 돼.”
“깔깔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앉아있던 여자들이 그 사람을 향해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아마도 성형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 예뻐, 예뻐.” 그러자 나중에 온 사람이 “괜찮아? 반응이 별로 안 좋던데..”라고 답한다. 그 이후의 대화는 일부러 듣지 않았다.
나는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였다. 늘 나보다 동생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는 여드름이 심하게 나는 바람에 빨리 화장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예쁘다고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내 외모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은 기억도 없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중학생 때였을 거다. 거실에서 컴퓨터로 친구와 채팅을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아빠와 놀다가 이런 질문을 한다. “아빠, 내가 예뻐요? 언니가 예뻐요?” “외모는 네가 더 예쁘지.” 장난스러운 동생의 질문에 사뭇 진지했던 아빠의 말투가 너무나 진심 같았다. 내가 예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진정으로 못생긴 아이가 되었다. 채팅을 하던 친구에게 집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일도 있었다. 엄마의 친구들이 왔다고 해서 동생과 대문 앞까지 나가서 인사를 했다. 우리 둘을 가만히 보던 엄마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언니보다 동생이 더 예쁘네.”라고.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 나는 그때 나와 동생이 서 있던 순서와, 장소, 그날의 온도와 분위기, 그리고 내 감정이 다 기억이 난다.
여드름이 심하게 난 뒤로는 내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숱하게도 들었다. 여드름엔 이게 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하는 말들도 모두 스트레스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하는 말도 힘든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런 식의 말을 하면 하루 종일 우울감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성인이 되고 난 후, 친구와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났는데 길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내 여드름에 대해 언급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기억들은 사진처럼 남아서 아무리 찢어도 찢어지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게도 매일매일 나에게 예쁘다고 해주는 남편을 만나서 같이 살고 있다. 노메이크업에 안경을 쓰고,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에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고 있어도 예쁘다고 말해준다. 덕분에 나는 꾸미지 않고도 외출을 하고, 사람들도 만난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무엇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 외모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저 멀리 아인이와 남편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여자들의 아이들도 보인다. 그 아이들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그 여자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어린아이들 곁에는 너의 외모가 어떻든, 무조건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꼭 있었으면. 그러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