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비밀

비밀이 비밀이 아니게 된 순간에 대하여

by 이다래

여느 때처럼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런데 배경이 집이 아닌 병원 침대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신장결석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고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엄마. 수술받는 날에는 걱정이 돼서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술은 분명 3~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연락이 계속 안 돼서 불안했다. 아인이를 재우고 나왔더니 아빠와 통화한 남편이 수술이 잘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수술의 경험이 없던 나는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음날에야 엄마와 연락이 됐고,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됐다.


문득 동생들은 엄마의 수술에 대해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은 주말마다 본가에 가니까 알 수도 있지만, 만삭의 여동생은 분명 모를 거라고. 예전에 제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생부부의 결혼식 날, 남편의 차로 가족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차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차 수리도 잘 끝났다. 그런데 그걸 엄마가 동생부부한테 말을 했나 보다. 제부가 그 일을 언급하며 괜찮았냐고 묻는데, 괜히 민망해서 엄마는 뭘 그런 얘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제부가 말했다. 비밀이 많은 가족인 것 같다고. 너무 맞는 말이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동생은 제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거 같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엄마는 영상통화가 아니었으면 나에게도 입원했다는 이야길 하지 않았을 거다. 이유는 뻔하다. 걱정시키기 싫어서. 내가 동생에게 엄마 소식을 전하지 않은 이유도 그러하니까.


무사히 퇴원하고 집에서 잘 쉬고 있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생각보다 얼굴이 괜찮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얼마 후 여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수술한 거 이제 알았다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다고. 엄마가 끝까지 비밀로 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밀이 끝났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있었다. 어릴 땐 그랬다. 가끔 온 가족이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가곤 했다. 집안 사정이 그럭저럭 괜찮을 땐,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걸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엔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우리 집 경제상황을 알 수 있었다. 마트에 가는 일은 나에겐 늘 설렘이었는데, 내가 고른 물건이 거절을 당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리 말해주었다면 좋았잖아. 하고. 엄마 입장에선 집에 돈이 없다는 걸 어린 자식들에게 말해주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다.


1년 전쯤엔, 아빠와 크게 다툰 일이 있었다. 흥분한 아빠는 나를 때리려고까지 했고, 엄마는 어떻게든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나를 다그쳤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의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 그렇게 했다. 아빠에게 너무 실망했고 엄마에게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왜 엄마는 아빠에게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냐고. 엄마는 왜 매번 아빠만 두둔하냐고. 그런 마음들이 내내 마음속에 떠다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엄마가 그날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본인도 속이 상해서 죽을 뻔했다고. 엄마는 언제부터 알기 시작한 걸까. 내가 엄마의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했다는 걸. 비밀이 비밀이 아니게 된 순간,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됐다.


나는 아직도 비밀이 많다. 20대 후반 즈음 폐렴으로 입원을 했었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임신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유산도 했었고, 남편의 임금체불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 모두가 가족들에겐 비밀이다. 덕분에 크고 작은 오해들이 생겨 말다툼으로 번진 적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나도 얼마든지 마음 아플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이전 04화네가 어떤 모습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