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취향이라는 게 없었다. 채팅을 해서 어느 정도 마음이 맞다는 걸 확인하면 직접 만났는데, 그러고 나서도 상대방이 연락을 끊지 않으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식이었다. 두 번째 연애도 그랬다. B는 다정한 편이었고, 키도 컸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얼굴이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다는 것.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나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치마 입은 모습을 보고 싶대서 잘 입지도 않는 치마를 사서 입기도 했고, 다른 도시에 살던 B를 만나러 한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한 번은 B에게 나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주었다. 그때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거였다. 그렇게 편지를 전달했는데 이상하게 B의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문자를 한번 보내면 5~6시간 후에 답장이 오기도 했다. 친구가 너네는 왜 그렇게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친구에게 “우린 원래 이래.” 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B에게 헤어지자는 문자가 와 있었다. 내 편지가 부담스러웠단다. 핸드폰 화면을 덮고 그대로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편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부담스러웠던 거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관계의 끝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건 B의 '큰 키' 그거 하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C를 만났다. 역시나 채팅으로. 그쯤엔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마초 같은 남자에게 끌렸는데, C가 그랬다. 나보다 나이도 2살이 많아서 더 좋았다. C는 스킨십을 좋아했는데, 나는 그게 사랑의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본인은 나의 속도에 맞춰주겠다고 말했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다급해 보였다. 한 번은 친구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이후에 C가 나에게 말해주었는데, 나랑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남자들끼리 각자의 여자친구와 스킨십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느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나는 C의 입을 통해 친구 커플의 스킨십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건 그 당시 같이 목욕탕도 갈 정도로 친했던 친구에게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연애 2주 차쯤, C는 나에게 돈을 빌렸다. 엄마 생신선물을 사려고 하는데 돈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 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나 역시 학생이었으며 친한 친구와 같이 현장실습을 하기 위해 무리해서 부산까지 내려와서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ATM기로 걸어가는 길, 친구가 말했다. 그 남자 이상하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좋아하니까 뭐든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C는 연애상대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비참하게 했던 기억은 식당에서 일어났다. 함께 김밥천국에 갔고, 냉면을 주문했다. 나는 평소에 음식을 한입 크기로 잘라먹는 걸 좋아한다. 앞니가 부정교합이라 음식물을 이로 잘라내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입에 한꺼번에 많은 음식이 들어가면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C가 냉면을 먹여주겠다고 나섰다. C가 집어 든 냉면의 양을 보고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못 먹겠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받아먹었다. 켁켁거리면서 억지로 냉면을 씹어 삼켰는데, C가 말했다. “왜 그걸 다 받아먹고 있어. 못 먹겠으면 말지.”라고.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 때문에 나는 더 비참해졌다.
내가 C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들이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C가 좋았다. 이번에도 내 마음을 구구절절 담아 편지를 써서 줬는데, C의 답은 1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거였다. 갑작스런 C의 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답장이 오지 않는 문자를 하루에도 여러 번 남기고, C가 접속할까 봐 집에 오자마자 채팅 메신저를 켜놓았다. 어쨌든 시간은 지났고, 나는 여전히 실습 때문에 부산에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채팅으로 이야기하자는 연락이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랬다. C가 나를 만난 건 이전에 좋아했던 여자를 잊기 위해서였다고. 그러니 이만 헤어지자고.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욕이 오고 가기도 했지만 기억나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최악의 남자였지만 이별 후유증은 가장 심했다. 싸이월드 일기장에 아무렇지 않은 척 글을 써놓곤 했지만, 사실 너무 힘이 들었다. 한동안은 매일 밤 울었고, 다시 연락이 오기를 바랐다. 모든 게 편지 때문인 것만 같아서 누구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C에게 나는 너무나도 재미없는 상대였을 것이다. 게다가 본래의 목적이었던 스킨십도 성공하지 못했으니 C의 입장에선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갈 이유가 없었을 거다.
즐겨보면 애견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반려견 훈련사는 문제견을 만나면 종종 이렇게 물어본다. “언제 입양하셨어요?”라고. 너무 일찍 모견과 분리되면 사회성이 제대로 발달되지 못해 성견이 되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단다. 마치 그때의 내가 문제견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성을 만나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배운 적도 배우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지난 3번의 연애에서 역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네 번째 만남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