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10대에, 그러니까 고등학생 때 나는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계곡으로 동아리 엠티를 떠났다.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물가에 나왔다. 먼저 나와 있던 선생님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말했다. 네 키가 큰 편이니 물이 얼마나 깊은지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한껏 들뜬 나는 친구들을 대표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해져서 그러겠다고 했고,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큰 친구와 함께 물에 들어갔다.
열 발자국 정도 들어갔을까. 이 정도면 괜찮은데?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갑자기 수심이 깊어졌고, 우린 물에 빠지고 말았다. 몇 차례 뿌연 계곡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상하게 침착해졌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물에 빠졌을 땐 몸을 가만히 두면 저절로 물에 뜰 거라는 것. 허우적대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더니 정말 물 위로 몸이 떴다. 그런데 함께 빠진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면서 나를 계속 붙잡는 바람에 내 몸은 물에 뜨기 무섭게 가라앉았다. 다행히 같은 장소에 있던 다른 무리 중 한 남자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우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금방 구조됐다. 장난치는 줄 알았다던 선생님의 넋 나간 표정과 감사하다는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 자신의 텐트로 돌아가던 남자의 표정이 기억이 난다.
물에 빠진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깊은 곳은 무서웠지만 그건 물에 빠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교회 여름수련회로 바다에 가면 제일 먼저 물에 뛰어드는 것도 나였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들어서 물에 빠트리는 것)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와중에도 나는 대놓고 즐겼다. 아인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배우고 싶었던 운동도 수영이었다. 그러던 중 위기가 찾아왔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한다. 근처에는 내천이 있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서 풀과 꽃을 보기도 하고 내천에 있는 오리나 왜가리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토록 평화로운 산책활동이 두려운 이유는 징검다리 때문이다. 징검다리 건너기는 내천 산책의 필수코스인데,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 무섭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1부터 10까지의 강도로 표현하다고 가정해보자. 혼자 건널 땐 심장이 3정도로 떨어지는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건너면 마음이 10만큼이나 떨어진다. 다른 선생님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건너는데, 나는 손을 꼭 잡고 하나둘 하나둘을 크게 외치면서 건너는 데다가 그마저도 한두 번씩 으악으악을 외치고 만다. 그러다 아이가 물에 발을 빠트리기라도 하면 겁에 질린 나 때문에 아이가 빠졌을 거라는 생각에 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며칠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종종 가는 공원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못 둘레는 난간 없이 나무데크로만 꾸며져 있다. 아인이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연못가를 활보하다가 물 위에 떠 있는 소금쟁이를 발견했다. 몸을 연못 쪽으로 한껏 기울여서 소금쟁이를 관찰하는 아인.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소금쟁이를 같이 보자고 했지만, 나는 멀찍이 서서 남편에게 아인이 잘 잡아주라고 당부만 할 뿐이었다. 연못가에 있는 동안 심장이 몇 번이나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아인이가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내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급기야 남편에게 아인이를 맡기고 연못이 잘 안 보이는 곳으로 잠시 피신했다. 수심은 성인 무릎까지 올 정도로 얕다. 빠진다 해도 옷이 젖는 것 정도겠지.
그때 내가 물에 빠졌던 기억 덕분에 징검다리 공포증(?)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에 골몰하던 중 나는 내가 요즘 과도하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떨 땐 과거의 나에 대한 연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쓸모없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계속 징검다리를 두려워하는 보조교사로 남겠지. 어쩌면 물에 빠진 기억과 징검다리 공포증은 밀접하게 관련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여름이다. 너무 뜨거운 날엔 놀이터에 가는 것이 힘드니 내천에 나가는 일은 더 많아질 거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넌다. 아이들은 징검다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쪼그려 앉아 기다란 풀로 낚시놀이를 하기도 하고, 큰 나뭇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워 보내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 근처에 서서 물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고등학생의 내가 물에 빠졌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했던 내가 있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어쨌든 과거의 나를 연민하는 대신 지금의 나를 믿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