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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goongjun Jun 18. 2022

08. 책 만들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편집디자인 적응기 #2

편집자도 아닌데 갖게 된 직업병, 맞춤법


입사하고 1년 정도 지나면서 정기적인 업무에 익숙해지니 슬슬 필요한 교육을 하나둘씩 받게 됐다. 좀 더 일찍 받았어야 했지만 편집디자인을 하나도 모른 상태로 입사해 당장 급하게 다가오는 마감들을 쳐내다 보니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는 1년이었다. 그리고 업무를 진행해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안 뒤에 배우는 게 나은 것도 있으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받은 교육은 교정교열, 맞춤법에 대한 것이었다. 편집자도 아니고 디자이너가 교정교열을 왜 배우나 했었는데 주력으로 발간하는 서적들이 특정 분야에 속해있고, 번역서도 많아 내용들을 파악하면서 작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배웠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세를 배웠던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디자인을 계속해오면서 느끼는 건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첫 출발점에서부터, 대상 고객층, 프로젝트의 내용, 바라는 결과물에 대한 이미지 형상화가 잘 이루어져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책으로 초점을 맞춰보면 '이 책을 왜 만드는가?', '이 책의 독자는 누구고, 이 책을 활용해 어떤 활동을 하기를 바라는가?', '독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가?', '독자가 이 책을 편안한 마음으로 꾸준히 볼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의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이 책은 쉬는 마음으로 읽을 책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집중해 읽어야 하는 책인가, 또는 틈틈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책인가?' 등을 생각해야 하는 거다. 결국 책도 독자의 UX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선 최소한 책의 개괄적인 내용과 전체 내용의 흐름과 맥락, 특정 분야에서 통용되는 용어 정도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더라. 그러다 보니 맞춤법을 알고 읽어야 해서 교정교열 수업이 꼭 필요하더라. 


교정교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듣고 난 뒤, 드디어 수업 날! 첫날 수업을 들으러 가보니 수강생이 꽤나 많았다. 평일 퇴근하고 듣는 수업인데도 자리가 꽉 차더라. 수강생의 대부분은 편집자였는데, 나처럼 편집 외 분야인 분들도 좀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강의하시는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이었는데 교정교열 강의로 꽤 유명하신 분이었다. 수업시간을 충실히 지키시는 것도 있지만, 띄어쓰기와 맞춤법 규칙을 원칙대로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셔서 수업이 어렵기도 했다. 게다가 숙제도 해야 했다. ㅋㅋㅋ 생각해보라, 평일 업무 마친 뒤 서울 곳곳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강의실로 몰려와 너무나 헷갈리는 띄어쓰기 규칙을 배워야 하는 와중에 학교 다닐 때처럼 숙제까지 해야 하다니 ㅋㅋㅋㅋ 많은 양의 숙제를 내주신 건 아니었지만 수업 가기 전까지 집중할 시간을 할애해서 봐야 했기에 피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도 수업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맞춤법 규칙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뒷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해주셨고, 교정교열 가르치는 여타 강의들 중에서 가장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보니 맞춤법의 기본을 잘 쌓을 수 있었다. 한 2주 정도 듣고 나니 일상생활 속에서 강의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ㅋㅋㅋ 주변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의 맞춤법이 맞는지 확인하고 틀린 건 교정하고 있더라! (정말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회사에 가서 이야기하니 모두들 '그게 정상이야, 우리 모두 다 그랬어' 하시더라. ㅋㅋㅋㅋ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직업병(?)이 되어버려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조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됐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은 내 핸드폰의 기본 어플이요, '맞춤법 검사기'는 작업할 때 항상 켜 두는 웹페이지가 됐다. 맞춤법을 제대로 보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조판 작업을 하다 보면 눈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지더라. 눈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지니 자연히 내용 자체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내용에서 교열 부분에 더 좋은 게 어떤 게 있을지에 대해 제안하는 부분도 생기고, 이후 다른 책 작업을 할 때도 책 내용이나 기획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디자인 결과물도 더 좋아지더라. 2-3년 만에 이렇게 된 건 아니고 지금까지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되었다. 내용에서도 같이 체크해줄 수 있다 보니 함께 작업하는 편집자들도 좀 더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디자이너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처음 교정교열 교육을 받을 때는 필요하다고 하니 별생각 없이 교육받은 거였는데 지나고 보니 '첫 회사로 참 좋은 회사를 만났었구나' 하는 걸 많이 느낀다. 경력이 길어지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디자이너들 보면 '맡은 것만 하면 되는데, 디자인 외에 다른 분야를 배울 필요가 있나요?'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회사들에서도 '굳이 뭘 교육시켜? 디자이너는 그냥 시키는 거 잘하면 되는 거 아냐?' 이런 곳들도 많이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 첫 회사는 디자이너라도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관련한 부분에 있어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고, 그에 따라 배우고 싶다 하는 것들은 최대한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더불어 기획의 시작부터 모두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조직이었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끼고 산다. 


어쩌면 누군가는 '실제 업무랑 별로 상관없는 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요?'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교육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기획자와 논의하고 디자인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능력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각자 맡은 부분 외의 것에 대해 알면서 같이 논의하려는 협업자들이 줄어들다 보니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면서 각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운좋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같은 생각으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여전히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 그럼에도 더 많이 비슷한 사람들을 못 만나서 자꾸 과거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보면 나도 그저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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