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3)
우리는 종종 생각합니다.
'이 모습 들키면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내가 사실 이렇게 약한 사람인 걸 알면,
날 좋아하던 사람들도
떠나지 않을까.'
그래서 괜찮지 않은 날에도 우리는
썩 괜찮은 얼굴과 강한 모습을 꺼내 씁니다.
마치 가면처럼.
어느 순간,
그 가면은
허탈함과 무기력함,
회의감과 '인생노잼'이라는 이름의
후유증을 남깁니다.
그 후유증은 참 요망해서,
피할 틈도 없이
그림자처럼 나를 덮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눈물 뚝. 울지 마."
"그 정도 일로 울긴 왜 울어."
"아이고, 세상이 무너진 줄 알겠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야
사랑받는 사람 같았고,
괜찮아야
어른 같았고,
괜찮아야
문제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슬퍼도 웃고,
지쳐도 버티고,
무너져도 괜찮은 척하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우리가 쓰는 가면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리더로서,
가장으로서,
우리는 썩 괜찮은 얼굴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한 얼굴을 선택해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버티는 건 책임이고,
참는 건 용기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강한 척하는 당신이
가식인 건 아닙니다.
그건 살아온 방식이고,
지켜온 자리입니다.
다만,
그 가면을 쓴 채,
가쁜 숨을 몰아 쉬다가
숨 막히지 않도록,
나에게 숨 쉴 틈을 주는 건 어떨까요.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금이 간 그릇은 더 많은 빛을 품는다."
깨진 건 버려야 할 것 같고,
금 간 건 숨겨야 할 것 같지만,
빛은 늘
매끈하고 완벽한 표면보다
금이 간 틈으로 더 들어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사자도
쥐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숲에서 가장 강해 보이던 존재가
가장 작고 약한 존재에게
목숨을 건지죠.
약한 순간의 내가
강한 날의 나를 살립니다.
이건 이야기 속 교훈이 아니라,
우리 삶의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에게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대신
솔직한 사람에게 머뭅니다.
흔들리지만 돌아오는 사람,
무너지지만 숨지 않는 사람에게
신뢰가 쌓입니다.
오늘 괜찮지 않은 당신은
실패한 하루를 산 게 아닙니다.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은 하루를
산 겁니다.
괜찮지 않다고 인정한 날은,
당신이 처음으로
당신 편이 된 날입니다.
요즘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죠.
"괜찮아. 넘어져봐야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워."
"울어도 돼.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돼."
"아빠, 엄마는 어떤 순간에도 네 편이야."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에게만은
그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자녀에게 좋은 말을 건네어도
부모가 건네는 말과 삶이 다르면
아이는 결국
말이 아니라 삶을 배웁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나에게 말해주면 됩니다.
괜찮지 않아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혹시 오늘 밤,
잠들기 전에 거울을 보게 된다면
딱 한 문장만 말해보세요.
"나는 오늘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괜찮지 않은 날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
결국 자신을 오래 지킵니다.
오늘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날입니다.
당신이
당신 편이 되어준 하루로.
오늘도 나로서, 살아주어 고맙다.
정말 고맙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나의 편으로 남는다.
오늘, 당신은 어떤 하루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