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4)
우리는 대부분,
'나를 챙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눈치를 봤고,
조금 크면
동생을 챙겼고,
어른이 되면
친구 눈치, 조직 눈치, 사회 눈치..
거기에 더해 사회적 일원이 되고,
가정을 책임지고,
부모를 걱정하고,
아이를 키웁니다.
혼자라면 더더욱,
더 성장해야 하고,
미래의 내 삶까지 책임지며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긁고 갈아내듯
열심히 살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 하루의 중심에는
항상 **'내가 아닌 역할'**이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에 맞는 사람이 되고,
그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어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부모 대신 어른 노릇을 해야 했고,
자기 마음보다
집안 분위기를 먼저 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돌봄보다
책임에 더 익숙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쉬고 싶어도
쉬는 게 불안한 사람들.
나를 챙기면
왠지 죄책감이 드는 사람들.
이건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나 대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돌보고 챙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수록 우리는
소리 없이 닳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무기력해집니다.
이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파도 참습니다.
지쳐도 미룹니다.
속상해도 덮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나만 힘든 건 아니잖아."
그 말로
오늘도 나를 설득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보다 마음이 먼저 고장 납니다.
좋은 일에도 무덤덤해지고,
싫은 일에도 무감해지고,
기쁨과 피로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버티고는 있는데,
살아 있는 느낌은 사라집니다.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내 인생을 사는 기분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 돌봄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가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시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챙기는 일을 미룹니다.
그러다 번아웃이 오고,
그제야 뒤늦게 쉬려고 합니다.
사실,
자기 돌봄은 거창한 휴식이 아닙니다.
하루에 단 3분이면 충분합니다.
잠깐 눈을 감고
오늘 내 몸의 피로를 느껴보는 시간.
커피 한 모금을
휴대폰 없이 마시는 순간.
거울 앞에서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혼잣말해 주는 짧은 순간.
이 작은 시간들은
처음엔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감정의 예열이 만들어지고,
정확히 60일쯤 지나면
우리의 뇌는 인식합니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차가운 엔진으로
하루를 버티지 않게 만드는
가장 최소한의
내 감정 돌봄입니다.
우리는 종종
잘 버티는 사람을
좋은 어른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무 말 안 하고,
아무 표정 안 짓고,
끝까지 견디는 사람.
하지만 스스로를 바라보고
감정을 관찰하며 살아보면 알게 됩니다.
잘 버틴 사람보다
잘 회복하는 사람이 끝까지 갑니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성실함은
언젠가 자신을 배신합니다.
나를 챙기지 않는 성실함은,
결국 나를 소진시키는 노동일뿐입니다.
나를 먼저 챙긴다는 건
다른 사람을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를 고갈시키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오늘도
내 감정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조용한 약속입니다.
혹시 오늘 하루,
숨이 조금 가빴다면
딱 3분만
나에게 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판단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기.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는 오늘도 나를 먼저 챙긴다."
이 한 문장이 쌓이면,
당신의 삶은 조금씩
부서지지 않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남을 챙기는 마음의 질이 달라집니다.
잘 버티는 삶에서,
잘 사는 삶으로.
오늘은
그 연습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의 편으로 남습니다.
우리는 혼자인 순간조차, 혼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