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20년, 작가로 서다

재능은 알아채는 순간 싹이 트고, 응원받을 때 꽃을 피운다

by 희유

돌고 돌아 20여 년에 되찾은 나의 꿈, 작가


내 인생에서 가장 꼬여버린 순간은, 수능시험을 치른 지 단 3주 만에 고려대학교에 특차 입학을 하게 된 일이었다. “아니, 그게 왜 꼬인 거야?” 하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사연은 조금 복잡하다. 그해에는 언어영역 부문 최상위 1% 학생에게 특차전형이 있었고, 나는 이과생이었음에도 그 기회를 얻어 입학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이 따로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작가나 아나운서를 꿈꿨다. 매일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고, 자작시를 적었으며, 학교 방송반 활동과 소년한국일보 기자 활동까지 하며 글과 가까이 지냈다. 고등학교 때도 모의고사보다 논술 성적이 더 좋았다. 글쓰기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국문학과 대신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친한 친구 일곱 명이 모두 이과로 진학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싫어하는 과목도 없었던 나는 그저 친구들을 따라간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 그 순간이 내 진로를 비껴가게 만든 첫 번째 갈림길이었다.


수능을 마치고 나서야 다시 선택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교차지원은 합격에 불리했다. 결국 나는 국문학과의 꿈을 접어야 했다. 친구들이 정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합격의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 순간에는 안도했고 당시에는 몰랐다. 나의 본래 꿈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20여 년이 더 걸리리라는 걸.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매주 독후감을 숙제로 내주셨는데, 인생 처음 받아보는 독후감 숙제에 난감함도 잠시, 나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나만의 독후감을 손쉽게 적어냈다. 8살의 패기 넘치던 나는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줄거리만 적었다. “이러쿵, 저러쿵, 결국 네로는 죽었습니다. 끝.” 그때 선생님은 빨간 펜으로 짧은 피드백을 남기셨다. “교훈과 느낀 점은?” 그 질문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글이란 줄거리를 적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마음을 느꼈는지를 담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글짓기, 일기 쓰기, 논술대회에 나갈 때마다 늘 상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가장 상장을 많이 받은 학생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글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고, 스스로도 재능이 있음을 확인받는 기회와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상장들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어린 내가 스스로에게 보낸 작은 이정표였고, “너는 글로 살아가야 한다”는 소명과 같은 사인이었다.


브런치스토리는 내가 존경하는 작가님을 응원하기 위해 가입하면서 알게 되었다. 얼굴도 스펙도 필요 없는, 편견 없이 글이 전부가 되는 무대.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돌고 돌아온 나의 20여 년은 이곳에서 새로운 빛깔을 얻었다. 꼬임도 결국은 길이 되었다. 인생의 구간마다 얻은 지혜는 이제 한 편의 글이 되어, 기꺼이 독자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내 지난 길은 꼬이고 힘들었던 게 아니라 결국 나를 글로 이끌기 위한 운명의 수레바퀴였다. 어느덧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지금은 도쿄의 중심에서 나의 인생을 녹여내는 글들로 소통하고 있다.


재능은 스스로 알아채는 순간 싹이 트지만, 타인이 알아봐 주고 응원해 줄 때 꽃을 피운다. 나의 글은 그렇게 싹이 되어 꽃을 피웠고, 이제는 나와 타인이 놓아준 그 한 줄기의 선 위에서, 내 인생의 점들이 모여 춤을 추듯 기쁜 맘으로 나의 글을 이어간다. 브런치스토리 위에서, 비로소 나답게, 다시 작가의 꿈을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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