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늘도 운명을 튀기고 있다

누구보다 뜨겁게

by 희유



나는, 우아하게 독서하는 미라클 모닝을

꿈꾼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새벽공기를 뚫고,

오늘도 미라클 도시락 전쟁을 시작한다.




닭다리살은 자기 전 우유에 재워두고,

새벽엔 후추와 소금에 살짝 더 간을 한다.

생크림과 달걀물, 빵가루를 거쳐

두 번 튀겨내는 나의 루틴.

아이 둘, 도시락 둘, 물통 둘, 간식 둘,

식탁매트 넷(남편과 나)

벌써 4년째다.




도시락이라는 이름의 운명


처음엔 생각했다.

‘이걸 왜 내가 매일매일 하고 있지?’


그런데 아이들이 급식을 단호히 거부하며 말한다.

“엄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 한마디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도시락을 싸게 된다.


나의 게으름을 이겨내는 무기이자,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증명처럼.





도시락의 기억


뭐 그까짓 도시락,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잖아.
그런데 사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싸주지 않아도 되는,
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을 이미 누린 세대였다.

다만 그 시절 급식은 무상이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의 무상급식은

정말 다양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그 점은 늘 감사하게 여긴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급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엄마께서는 급식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철없던 시절의 내 짐작일 뿐이다.)

반의 3분의 1 정도는 늘 도시락을 챙겨 왔다.
가방은 무겁고, 밥양은 또 어찌나 많던지.
그땐 그게 참 속상했다.


내 도시락 밥통의 크기는 단연 반에서 1등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예 도시락을 두 개씩 들고 다녔다.


밤 11시 자율학습이 끝나고 나오면

가방 안에서 도시락이 시큼하게

냄새를 풍기는 날도 있었다.


돌아보면 그게 바로 나를 키운 힘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도시락을 물려받은 엄마



그런 추억을 뒤로하고,

도쿄에 살면서 급식과 도시락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에서,

나는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듯,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고 있다.


가업을 물려받은 기분이랄까



나도 모르게 그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락에 대한 불만보다, 감사와 존경이 먼저다.

그건 루틴이었고, 사랑이었고, 우리 가족을 잇는 끈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들들은 급식을 싫어하고

나의 도시락을 사랑한다.

급식을 먹어보자고 제안해도 절대 싫다며,

"엄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고

남자아이 둘이서 사랑스럽게 아양까지 떠니,


나의 도시락 싸기 운명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사실 도쿄로 온 것도 내 선택이었고,

도시락을 싸기로 한 것도,

이 루틴을 4년 넘게 이어가는 것도

모두 나의 의지였다.


운명이란 어쩌면 그렇게,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운명이라 믿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우리가 걸어온 의지의 결과였다.





오늘도 도시락을 싸며


나는 오늘도 도시락을 싼다.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쌓이고 쌓인

나의 이 행위(?)가

점점 아이들을 향한

내 사랑이라는 증명이 되고,

루틴이 되고,

나의 게으름을 타파하는 큰 무기가 되고,

무엇보다 자부심이 된다.


어쩌면 매일 아침, 이 부엌에서

나의 두 손으로 ‘운명을 튀기고 있는’

순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락을 싸며,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하루가, 나를 위한 루틴이자

나 자신을 위한 확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비바람 부는 날도 있었고, 도망치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택하고 살아간다.

지금 이 삶을,


오늘 이 도시락도, 나의 하루도.



도시락을 싸는 일은 어느새,

나를 다잡는 아침 루틴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삶을 튀긴다. 누구보다 뜨겁게.



여러분의 도시락 기억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그리고 하루를 지탱해주는 작은 루틴은 무엇인가요?







✍️ 작가 소개


도쿄에서 일상과 감정을 기록하며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삶의 결을 오래 바라보며 그 안의 온도와 깊이를

사유하며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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