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고 비워낼 때 단단해지는 삶의 리듬
정리되지 않은 식탁은 마음까지 흔들리게 한다.
국그릇이 삐뚤면 하루도 덩달아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반대로, 소박하게 가지런한 식탁은 삶 전체를 붙잡는 작은 질서가 된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반듯하게 놓인 순간, 우리는 이미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허기를 달래는 도구를 넘어,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숟가락과 젓가락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늦은 밤, 사건일지를 옮겨 적으러 경찰서에 갔다가
경찰분들의 제의로 급식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식사를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게 급히 마쳤다.
(아마 그때도 내 젓가락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을 거다. 기싸움이니까.)
식사 후, 고요한 사무실에서 사건일지를 노트에 옮겨 적는데
마침 경찰들이 옆으로 다가와 TV를 틀었다.
흘러나오는 뉴스소리가 긴장과 고요한 정적을 뚫고,
공기 중에 퍼졌다.
긴장한 신입기자에겐 그 소음이 마치 백색 소음처럼 들렸다.
그 순간, 누군가 내게 물었다.
“기자 양반, 저 사건은 어떻게 보나?”
속으로는 ‘아까 먹은 밥이 목에 걸리는 느낌이네…’
머릿속에서는 논리를 찾느라 버둥거렸다.
얼굴빛은 금세 붉어졌다.
그때, 조금은 더 낯익었던 경찰 한 명이 웃으며 거들었다.
“우리는 경찰이 나오는 영화가 제일 재밌어요.
보면서 우리랑 비교해 본다니까.
'야, 저건 실제로는 절대 안 된다!' 하면서. 허허.”
순식간에 긴장은 풀렸고, 남은 대화는 편안하게 흘러갔다.
그날 나는 알게 됐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밥그릇만 스쳐도 인연이 된다는 사실을.
말보다 강한 연대감은, 때때로 밥 한 끼에서 시작된다.
사실 저는 낯선 사람과 밥 먹는 게 어색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밥을 같이 먹다 보면 마음이 풀리고
가까워지더라고요.
여러분은 누군가와의 식사 자리 후 더욱 마음이 열리고
편안해진 순간이 있나요?
12년 동안 재벌가의 아이들을 돌본 베이비시터,
지인옥 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의 일은 산모도우미가 떠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가족 행사와 집안 행사, 심지어 해외여행까지 동행했다.
아이 학교 등하교, 식사까지 챙기며 사실상 엄마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녀가 본 재벌가의 식탁은 철저한 질서의 무대였다.
아이들 식탁은 어른과 분리되어 있었고,
아이 전용 식기는 남이 절대 사용할 수 없었다.
위생은 완벽해야 했다.
집 안 어디에도 흐트러짐은 허용되지 않았다.
신발은 늘 나란히, 물건은 제자리에.
심지어 말도 규칙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정적인 말을 절대 하지 못하게 배웠다.
처음에는 까다롭고 규칙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수없이 보았다.
재벌가 사람들은 ‘내 사람이다’ 싶으면
놀라울 만큼 세심하고 배려가 깊다는 사실을.
상대가 어려움을 겪으면 도와주고,
경제적 도움도 아끼지 않았다.
그 내 사람 안에는 그녀도 있었다고 했다.
(이는 그녀가 직접 겪은 경험에서 비롯된 관찰이다.)
그녀가 일했던 집은 크게 두 부류였다.
대대로 내려온 재벌가와 자수성가형 재벌가.
전자는 가진 것을 지키는 데 집중했고,
전통과 체면을 중요시했다.
자수성가형 재벌은 재테크와 성공의 경험을
자녀에게 전하려 애썼다.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의외로 검소했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구멍 난 티셔츠를 입고 지낼 때도 있었지만,
생활 태도만큼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는 말했다.
“12년 동안 재벌가의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산책을 나가든,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늘 무엇보다 시간을 아껴 쓰더군요.”
집에는 기사, 살림 담당, 출퇴근 청소, 요리사까지
네댓 명의 직원이 있었다.
큰 집일수록 매일 누군가의 손길이 오갔지만,
그 중심에는 늘 규칙과 질서가 있었다.
아이들이 젓가락질을 배우는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음식을 먹는 작은 습관 하나까지, 일상의 틀로 이어졌다.
그녀는 그 속에서 점점 다른 걸 배워나갔다.
그녀가 본 재벌가들은 하나같이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은 뒤 기회를 주고,
그 후에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단호하게 정리했다.
여유와 절제, 단호함이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말투와 태도를
제가 따라 하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재벌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어려움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라는
말을 저도 사람들에게 따라서 하기 시작하면서
제 삶도 달라졌습니다."
그녀 역시 그 습관을 벤치마킹했다.
말이 바뀌니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니 삶이 풍요로워졌다.
재벌가 부모들이 늘 책을 가까이 두는 모습을 따라
그녀도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그녀도
말의 따뜻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이 힘든 날엔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혼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의 걸음과 말투였다.
재벌가라면 누구보다 늘 바쁘게 살아갈 것 같았지만,
오히려 걸음은 느렸고 말도 여유롭게 천천히 했다.
그 리듬을 따라 하면서, 그녀 자신의 삶에도 여유가
깃드는 경험을 했다.
물론 ‘들어도 못 본 체, 봐도 못 본 체’ 해야 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주말 하루를 빼곤 재벌가의 베이비시터일로 그들과
함께 먹고 자야 하다 보니 때론 몸도 많이 아팠다.
그녀는 12년을 끝으로 그만두었고, 이제는 자기 삶을 산다.
지금 그녀는 책을 쓰고, 책 코치로 활동한다.
이 재벌가의 사소한 습관들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기를 독려하는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습관이 바뀌니 생각이 바뀌고, 결국 못할 게 없더라고요."
물론 재벌가라는 무대는 보편적인 우리의 일상과 다르다.
이 사례는 특정 집단을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습관을 곁에서 지켜본 개인의 관찰 기록이다.
그녀가 깊게 바라본 건, 화려한 배경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사소하지만 작은 습관이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두는 일, 부정적인 말을 삼가는 일,
하루를 흐트러짐 없이 마무리하는 태도,
이런 작은 습관으로 그녀는 삶의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부정적인 생각, 시기, 질투는 멀어져 갔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기꺼이 돕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자랐다.
적어도 그녀는 '꿈재벌'이 된 셈이다.
**꿈재벌 = 재벌가처럼 부자가 된 건 아니지만,
습관으로 삶을 풍요롭게 했다는 의미**
우리도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작은 습관들을 내 삶으로 초대해 보는 일.
그 시작이 바로 오늘일지도 모른다.
세계 장수 마을을 연구한 Dan Buettner의
Blue Zones 프로젝트는 이렇게 말한다.
장수의 비밀은 값비싼 보양식이 아니라,
소박하고 절제된 식탁에 있었다.
오키나와의 저녁 상차림을 떠올려 본다.
작은 접시에 담백한 채소, 두부, 고구마가 놓이고,
사람들은 80%만 배부르게 먹는다.
그 습관을 '하라하치부(腹八分目)'라 부른다.
더 많이 먹는 것이 건강을 보장하지 않는다.
절제의 지혜는 얼굴의 평온한 빛으로 드러난다.
도서 《절제의 힘》 역시 이렇게 강조한다.
"더 많이 갖는 것이 힘이 아니라, 덜어내고 비워낼 때
우리는 더 단단히 살아남는다."
늘 넉넉하게 음식을 준비하시는 엄마셨지만,
삼 남매 중 둘째인 나의 어린시절,
7살 위인 언니의 식사량과 ,
씹는 속도가 빠른 남동생 사이에서
메인메뉴에 대한 경쟁심이 있었다.
언니와 동생에게 뺏긴 양마저 보상받겠다는 듯,
배가 봉긋하게 불러와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과한 집착에 가까운 식탐을 부릴 때면 엄마는
늘 염려하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배 안 고프면 그만 먹어라. 체하겠다."
늘 절제를 가르치시는 분이었다.
그 사이에서 아버지는 늘 삼남매에게 뭐든 넉넉하게
사주셨다.
탕수육집이 유행하던 시절,
아버지는 삼남매에게 1인 1접시를 사주셨다.
경쟁하듯 그릇을 비우던 그때, 1등은 늘 나였다.
아버지는 식탁 앞에선,
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분이셨다.
물 한 잔을 마셔도 반드시 먼저 “아버지 드세요” 하고
권해야 했고, 밥상에서는 아버지가 숟가락을 드시기 전
우리가 먼저 먹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마가 분주히 밥상을 챙기시는 동안,
우리만 배를 채우고 있으면 꾸중을 들었다.
젓가락질과 숟가락질, 반찬을 뜨는 태도까지
위생적이지 못하면 엄하게 지적하셨다.
하지만 엄격한 밥상머리의 아버지는,
집 밖에선 누구보다 다정한 분이셨다.
헌책방, 서점, 낚시, 운동, 캠핑, 심지어 사업장에도
자주 데려가셨다.
밥상머리에서는 누구보다 엄해 보이셨지만
일상에서는 우리를 늘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행동으로 전해졌다.
내가 지금 식탁 예절을 잘 지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함께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 절제력은
부모님께 배운 가장 큰 자산이다."
정리 전문가 마리 콘도의 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는 단순한 공간 정리가 아니라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 기술이다.
나 역시 경험했다.
아이들 장난감이 거실을 점령했을 때는
늘 뭔가를 찾기 힘들었고,
여행길에 손에 들고 있는 짐이 많으면
꼭 뭔가를 잃어버렸다.
한국에서 나는 3년마다 이사를 다녔고,
3년마다 내 집은 덩치를 불려 갔다.
집이 넓어지고 부동산이 커질수록
내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짐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한국의 집에서 일본의 집으로 이사오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것도 바로, 버리고 비우는 일이었다.
비워내자 질서가 생겼고,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질서와 몰입은 식탁 위, 하루 전체, 가족의 웃음,
우리 집 경제로도 번져갔다. 버리고 비우는 만큼
내 삶의 걱정거리도 함께 비워졌다.
미니멀리즘은 집 안 정리법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의 파동을 가라앉히는 태도였다.
당신의 집에서 가장 먼저 흐트러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가장 열심히 정리하는 공간이 있나요?
저는 책장이 늘 어질러지고, 대신 현관과 침대 위는 하루의 시작과 끝에 꼭 정리합니다.
가장 어렵지만 신경 쓰는 곳은 화장실이에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현대 심리학도 이를 뒷받침한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규칙적인 운동과 절제된 식습관을 유지한다 (Bogg & Roberts, 2004).
성격 특성은 음식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Intiful et al., 2019).
감각 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은 매운맛을 좋아한다 (Byrnes & Hayes, 2013).
식탁은 아주 정직한 성격 테스트 장소다.
경찰서 급식의 긴장, 재벌가의 예절, 오키나와의 상차림,
미니멀리즘의 정리, 심리학의 증거.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덜어낼 때 단단해진다.
절제는 강요가 아니라 태도이고, 식탁은 그 연습장이 된다.
한 숟가락 덜어내고, 천천히 음미하고, 남김없이 정리하는 그 작은 실천 속에서 나는 다시금 알게 되었다.
"먹는 대로 사랑하고, 사는 대로 먹는다."
나쁜 기운과 정리되지 않은 삶은 너무 쉽다.
그냥 두면 저절로 흐트러진다.
반대로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기운을 지키는 건
조금 어려운데,
그 이유는 작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성취를 경험한 사람만이
더 큰 노력을 덜 힘겹게 이어간다.
몸이 아픈데 단 하루 만에 건강해질 수 없는 것처럼,
삶도 불편한 부분의 균형부터 찾아,
작은 노력으로 차근차근 맞춰야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불안정한 파동을 가라앉히고
쇠약해진 기운을 회복하고,
삶의 질서를 되찾는 가장 당신다운 방법이다.
결국 밥상의 질서는 삶의 질서와 닮아 있다.
잘 정돈된 식탁에 앉으면 마음도 제자리를 찾는다.
바깥일이 고된 하루라도,
집에 돌아와 정갈한 밥상을 마주하면
스스로가 귀한 사람이라는 위안이 든다.
깨끗한 방에서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처럼,
식탁 위의 정돈은 내일의 기운을 바꾼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작은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잘 먹고, 잘 자고, 질서를 조금씩 회복하는 경험은
삶의 불안한 파동을 가라앉히고,
결국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으로 이어진다.
삶을 정리한다는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그 단순한 노력만으로도 불행은 멀어지고,
좋은 기운은 곁에 머문다.
당신의 식탁 루틴이 있나요?
일상에서 반복하는 소소한 당신만의 루틴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경험을 댓글로 나눠주세요.
〈사람을 닮은 음식 / 관계를 닮은 식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과는 예상보다 함께 하는 식자자리가 길어지고,
어떤 사람과는 예상된 시간보다 젓가락이 서둘러 멈춘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대화의 온도와 호흡은 제각각이다.
음식은 사람을 닮아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식탁은 그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무대가 된다.
그 무대 위에 엮인 이야기 속에 숨겨진 감정들을
함께 풀어가 보려 한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같은 자리에서 :)
참고문헌
Buettner D 2008 The Blue Zones: Lessons for Living Longer From the People Who’ve Lived the Longest National Geographic
Okinawa Centenarian Study 1999 일본 오키나와 장수 문화 연구 자료
Kondo M 2010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Wilson T D 2011 Redirect: The Surprising New Science of Psychological Change Little Brown and Company
Holiday R 2019 Stillness is the Key Portfolio
Bogg T Roberts B W 2004 Conscientiousness and health-related behaviors: A meta-analysis Psychological Bulletin 130(6) 887–919
Intiful F D Otoo G E Osei Y 2019 The relationship between personality traits and food choice Appetite 133 146–152
Byrnes N K Hayes J E 2013 Personality factors predict spicy food liking Appetite 66 217–224
Pfeiler T M Egloff B 2020 Examining the “veggie” personality Appetite 147 104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