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뜸해도 이어지는 마음의 끈
눈이 오던 날이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모퉁이 한편에 갓 이사 온 아이가 서 있었다.
나는 작은 우산을 내밀었다.
그 장면 하나가,
수많은 기억이 사라진 그녀의 삶 속에서 끝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당시 전교생 3,000명 속에서 아이들은 인기투표를 하곤 했고, 내 주변엔 늘 반장·회장 명부가 있었다. 많은 친구들 덕분에 내 이름도 매해 거기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여자아이들 중 드물게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고 잘했기에, 학과에서 열리는 스타크래프트 대회에도 여자 대표로 출전하고 그렇게 대학에서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친구들이 내 곁을 맴돌았다. 덕분에 학술회 진행자로 MC도 보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올 무렵부터 내 안의 불꽃은 점점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사랑에 빠지면 앞뒤 가리지 않고 몰입했고, 일에 매달리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태워버렸다. 나의 모든 열정이 나를 향할수록,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은 하나둘 멀어졌다.
내 인생이 높이 날수록, 곁은 단출해졌다. 그 빈자리는 외로움이 아니라,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게 하는 여백이었다.
그리고 그 여백의 자리에는 좋은 기억과 좋은 마음을 가진 인연들이 새로이 채워졌다.
그 와중에도 남아 있는 친구가 있다.
내 나이 일곱 살, 눈 내리던 날, 내가 우산을 씌워준 친구.
우리는 마주 보게 지어진 ‘쌍둥이집’ 같은 주택에서 함께 자랐다. 창문을 열면 서로 얼굴이 보였고,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그렇게 매일을 함께했다.
우리는 한 살 차이가 났지만, 그녀가 빠른 년생이라 함께 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8살에 1학년으로 입학할 때, 그녀는 7살의 1학년으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나이로는 내 연년생 남동생과 같았고, 내 남동생은 아직 유치원에 있었지만 그녀는 나와 같은 학년이 된 셈이었다.
그 미묘한 차이 때문에 늘 웃음거리가 생겼다.
내 동생은 끝내 누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는 또 누나 행세를 하며 장난을 쳤다. 그 사이에서 늘 중재를 하던 게 바로 나였다.
돌이켜보면 사소한 티격태격이었지만, 그 안에는 우리 셋만의 작은 추억과 웃음이 있었다.
6학년 무렵, 그녀가 이사 갔다.
시간이 흘러 대학 시절, 그녀가 먼저 나를 SNS에서 찾아왔다.
놀라운 건, 그녀가 해마에 문제가 있어 단기 기억이 잘 남지 않는 선택적 기억상실 **‘해리성 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했던 동네 친구들, 매일 같이 등교하던 무리들. 나는 그들과 대학까지 이어졌는데, 그녀는 그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녀는 오직 나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수많은 장면 중 내가 우산을 씌워주던 순간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드라마 같은 사실로 남아 있다.
기억의 공백이 있음에도, 그녀는 누구보다 단단히 자기 삶을 빛내왔다.
명문대 무용학과를 졸업해 국립무용단 무용수로 무대에 섰고, 내가 살고 있는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을 올린 적이 있다.
이후 발레를 가르치다 자신이 궁금해 심리학을 다시 공부했고, 지금은 아픈 아이들과 그 가족을 돌보는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결핍이 있음에도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
나는 그 사실이 늘 경이롭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어린 시절 외모를 기억한다.
웃을 때마다 배우 커스틴 던스트를 닮은 얼굴,
겨울 햇살에 유리알처럼 빛나던 녹색 눈동자.
그리고 늘 곁을 맴돌던 아버지의 다정한 모습까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한 아름 사들고 다니며, 지금도 다 큰 딸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철저한 딸바보 아버지.
사실 우리 아버지도 못지않은 자식바보셨다.
그래서 두 아버지가 마주치면 늘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의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옆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멈추기를…' 하고 속으로 빌며 웃곤 했다.
지금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자기 삶을 단단히 일구며
무용수로서, 또 심리상담사로서, 아버지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으며 자기만의 빛을 내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결핍과 공백이, 그녀를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닐까.
그녀는 우리 언니의 결혼식에도 내 결혼식에도 와주었고,
지금도 내가 한국에 갈 때면 서로 되도록이면 시간을 내어 만난다.
우리는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생일쯤, 큰 소식이 있을 때쯤, 아니면 그냥 하늘을 보다가 생각날 때쯤.
그렇게 뜬금없이 연락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통화를 시작하면 1~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나는 다가오는 상대에게는 감사히 반응한다.
하지만 먼저 연락을 자주 하거나, 쉽게 다가가지는 않는 성향이다.
그럼에도 내 곁에 남는 인연은 있다.
인연은 저마다의 호흡이 있고 상대적인 법이기에,
어떤 인연은 자주 웃고 떠들며 이어지고,
어떤 인연은 오래 비워 두었다가 다시 이어진다.
먼저 쉽게 밀어내지 않고, 오래 곁에 두는 사람.
서로의 성장을 존중하며,
각자의 독립적인 시기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사람.
멀리 있어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
친구란, 결국 그런 존재 아닐까.
자주 만나지 않아도,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기억의 어둠 속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장면처럼,
다시 이어지는 순간
가장 반가운 사람.
눈처럼 쌓이고 지워져도, 끝내 남는 건 우리를 이어준 따뜻한 순간 하나.
우정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다시 빛을 발하며 드러나는 것.
당신에게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그런 친구가 있나요?
혹시 지금은 그런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기억보다 현재의 마음이 더 깊은 인연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잠시 그때로 걸어가 보셔도 좋고,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당신 마음,
지금 이 순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