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느리게 오는 것

바람의 길이를 바꾸는 그림자

by 희유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은 자리에서
숨결만 먼저 흔들리고,


창턱에 기대 놓은 그림자가
서로의 방향을 대신한다.


어떤 체온은
가까이 있어도 손에 닿지 않고,
어떤 기척은
멀리 있어도
옷깃처럼 따라붙는다.


가르침이 필요한 마음은
늘 문밖에서 맴돌고,


한 번도 말 걸지 않은 마음만이
먼저 안쪽으로 가라앉는다.


빛의 방향을 가로지른
발자국의 간격이
그날의 관계를 결정한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그대로 남아
저녁 바람에 길이를 바꾼다.


그리고
말보다 느린 무언가가
가장 먼저 서로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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