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삶의 이름이 사라진 날

감각이 사라지면, 삶도 흔들린다

by 희유

며칠 전 점심에, 샐러드 가게에서

세트 메뉴에 함께 온 '오늘의 수프'를 받았다.

막상 먹어보니,
단호박인지 옥수수인지 구분이 안 된다.


긴 감기 후유증으로
후각이 마비된 탓이다.



단호박인지 옥수수인지,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간장인지,
모두 구분할 수 없었다.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맛들이
후각을 잃으니 이름부터 사라졌다.


무엇을 먹어도
"단호박이다"라고 말할 수 없고,
"간장 혹은 고추장 맛이구나"라고 선언할 수 없다.


음식은 있는데, 이름이 없다.
맛은 있는데, 정체가 없다.


결국 내 입안의 음식들은
그저 '음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로 남는다.


좋아하던 커피도 마찬가지다.
향을 잃으니 커피는 그저 쓴 물이었다.
아무리 근사한 원두를 골라도
향이 빠지면 ‘맛’은 껍데기처럼 남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밤이면
술을 조금 더 찾는다.
저녁이 되면 후각이 아주 조금씩 돌아오기도 하고,
술은 향이 없어도
나른하게 취하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마치 잃어버린 후각을
다른 감각으로 대체하려 애쓰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감각의 공백이
내 삶의 방향까지 건드렸다.


요즘 나는

일본에서의 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의 국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분명 방향과 목적지가 있는데도,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인생의 이름이 무엇인지
잠시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발은 땅을 디디고 있는데,

방향을 잃은 영혼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발의 방향과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향이 없으면 음식이 밍밍해지듯,
방향감각이 없으면 삶도 슴슴해지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맛있게 먹는 사람'이 되기 전에
'무엇을 먹는 사람인지' 알아야 했듯,
살기 전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 진짜 취향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름을 잃으면, 맛도 흔들린다.
후각을 잃고 나서야 알겠다.


긴 감기로 감각의 일부를 잃고 맛이 흐릿해지니,

삶도 잠시 무미해진 것뿐이었다.


나는 지금 삶의 맛을 잃은 게 아니라,
이 시기의 이름을 아직 붙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오늘의 수프처럼
랜덤이어도 괜찮다.


지금은 그저
눈앞의 온도를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젠가 이 감각이 돌아오면
그 이름은 분명,
더 깊은 맛으로 찾아올 것이다.


언젠가, 이 시기에도

이름을 다시 새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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