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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랑무 Nov 06. 2024

주전자의 계절

세상 가장 단단한 것 중 하나

뜨끈한 손만두가 먹고 싶어서 바지락 칼국수 집으로 간다. 손쉬운 냉동만두도 많다마는 오늘은 유독 그 집 생 만두를 포장하려는 참이다. 생김치, 단무지, 간장은 넣지 마세요, 걸어와서 좀 더운데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찬물?" 대답할 새 없이 찻물을 내온다. 미지근한 보리차다. 내오며 말한다. "이게 좋아 건강에도 좋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아 목 넘김이 좋다. 향긋한 냄새도 오랜만이다. 만두를 꺼내주며 당부를 한다. "언제 먹어요?" 오늘 낼 쯤요. "이거 바로 만든 생물이니까 오늘 안 먹을 거면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요. 혹시 얼면 떼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퐁당 집어넣어 찌든 지, 끓이든지. 속 터져. 그대로 들고 가요, 흔들지 말고!" 아유, 사설이 길다.   

  

만두에 진심인 아주머니 말을 뒤로하며 만두를 손에 넣었다는 만족감보다 보리차에 마음이 간다. 더러 눈에 좋다고 결명자를 한 줌씩 주전자에 넣어 끓여 먹다 보면 주전자 바닥에는 결명자 점액질이 끈적했다. 옥수수 차는 날이 따뜻하면 금방 쉬었다. 시원하게도, 뜨겁게도 먹기에 깔끔하고 좋은 게 보리차다. 제일 흔하고 오래된, 그래서 요즘엔 철 지난 낭만 같은. 정수기가 워낙 다양하고 잘 나와 있는 데다 생수는 또 얼마나 깔끔한 포장이던가. 손에 잡히는 크기부터 들어 올리기 힘든 18L 생수까지, 출처도 저기 프랑스부터 백두산까지. 편하게 앉아서 세상을 마시느라 구수한 옛정을 잊고 있다.      


결혼하고 지금껏 함께 하는 혼수 중에 주전자가 있다. 나사가 조금씩 헐거워져서 쓸 때마다 흔들거리는 느낌이지만 그를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와 내가 떼지 못할 정이란 없어 그는 여러 방면으로 자기 몸을 데우며 나를 도왔다. 봄여름엔 시원한 생수로 갈증을 달랬으니 이참에 주전자를 꺼내 윤기를 낸다. 철 수세미로 벅벅 힘을 내 문지른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상처가 많다. 오늘 여기에 한 주전자 가득 보리차를 끓이고, 뜨겁게 마셔볼 참이다.

주전자 깊은 속을 들여다보며 춥고 아파 뜨거운 것으로 속을 달래 열을 내 노곤하게 눕고 싶던 날을 떠올린다. 유자청, 배, 무, 생강, 도라지, 파뿌리 넣어 뭉근하게 한 주전자 끓여두고 몇 날 며칠을 두고 먹었던 날. 달고 맵고 쓴 재료는 뭉근하게 끓이다 보면 어느새 혼자의 맛 사라지고 걸쭉한 국물 범벅이 되어 몸을 적셨다. 꼭 필요할 때 곁에서 식구들을 지킨 열렬 파수꾼이 상처 나고 늙은 몸을 끌고 납시었다. 바야흐로 그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뿐인가. 코로나 상황이 길어질 때 아이가 주전자를 끌어다 놓고 거기에 콩나물을 길렀다. 언젠가 사뒀던 쥐눈이콩으로 콩나물을 기르겠다고 말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주전자에 콩나물? 그게 될까…? 오래되어 마를 대로 마르기도 했지만, 내 보기에 콩은 조림이나 하고, 밥에나 넣어 먹지 싹을 틔울 존재로 여기지 않았기도 해서다.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수분을 머금은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주전자에서 찰박찰박 싹트기를 기다렸다.     


아침저녁으로 알뜰히도 보살폈지만, 콩은 싹 틔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물을 갈아줘 가며 저녁에는 안으로 들이고, 낮에는 베란다 선선한데 내놓는 일상을 근근이 이어갔다. 콩이 오래되어 싹이 안 나나, 뭐가 문젠가 코 박고 보는 일상을 보내다 아무래도 싹은 안 나겠다면서 엄마 이거 그냥 버릴까? 했다. 그러다 하도 가까이 보니 콩이 물을 먹는 소린지, 싹을 틔우려는지 모를 그런 소리가 들린다면서 들어보란다. “과연 이게 정말 그 소릴까?” 하며 서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그러던 어느 날, 한두 개 싹이 올라오는 걸 보고야 이제 정말 올라오기 시작한다며 흡사 거사를 치른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보살핌과 정성으로 쥐눈이콩은 싹이 나고 자라서 콩나물국 한 끼가 되었다. 실로 보름은 족히 흐르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주전자는 끓이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다. 생명을 틔우는 공간이기도 한 것을 증명한 터. 언젠가 찻집에 갔을 때 물이 빨리 식지 말라고 찻주전자엔 옷도 입혀놨던데 그는 옷도 입는 대상이 된다. 우린 계절 따라 옷을 입지만, 동물이나 나무나 사물엔 그저 우리 뜻이 옷이 된다. 세상 가장 단단한 것 중에 하나, 강철의 야생성을 고이 잠재우며 물을 끓인다. 주전자로 태어나 애초의 감각을 잃어버리고도 빛도 열도 없는 공간에서 생명을 보았으니 그는 문명의 이기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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