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질을 타고났건
나사를 조인다. 수평과 수직을 이은 나사, 나무와 철제를 맺어주는 나사, 온갖 다른 성질을 이어 하나의 쓸모로 거듭나는 물건들의. 오래 쓴 물건들을 다음 해 쓰려고 보면 삭거나 늘어져 촘촘한 구멍이 너덜거릴 때 있다. 자주 쓰는 철망도 물을 거르느라 탕탕 치다 보면 어느새 망을 탈출, 모양이 찌그러진다. 돌렸다 풀었다 하는 의자의 나사,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서랍의 손잡이, 문의 고리는 급하면 얽어 쓰기도, 망을 이어 붙여 꿰매 쓰기도 했다. 김장을 하거나 살림이 큰 집은 그만큼 자주 쓰기도 했고, 막 쓰기도 했다. 소용이 닿는 물건은 중요한 것들인데 어느새 막 써서 닳는다. 비싼 걸 아껴 뻐겨 쓰는 마음보다 당장 소용 닿는 걸 자주 써 가까이 다정한 마음을 낼 일이다. 오래 쓰거나 자주 써서 '처음' 모양과 마음은 사라져도 '네 맘 아는 내 맘'처럼 소용의 품을 귀하게 여길 일이다.
무엇과ㅣ무엇을 연결한 틈에 낀 나사 혹은 망, 그 사이를 넘나들며 소용을 이어가는 바늘과 나사 같은 사람 어디. 처음 모양 사라져도 처음 마음 기억하는 사람 어디. 떨어진 플라스틱 채반 구멍 삼베로 얽어놓고 그게 뭐, 無量한 깊은 너, 대체 어디.
거대한 행성과 아주 작은 거미,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망 Web'이다. 가벼운 탄성을 지닌 거미줄과 행성들을 연결하는 굵은 밧줄은 크기와 무게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형태와 기능을 지니고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우주적 기하학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주란 모든 개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그물망이라는 것. 인간 역시 하나의 그물코에 불과하다는 것. 이미 세계는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지만,
『예술의 주름들』망의 상상력 · 나희덕 · 마음산책
냄비뚜껑 나사 하나가 어디로 갔는지 꽤 오래 나사 빠진 채로 쓰려니 불편했다. 다른 비슷한 뚜껑을 덮어쓰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근처 철물점을 돈다. 마땅한 게 없어 그냥 돌아온 참인데 블라인드를 달러 온 사장님 공구함에서 그럭저럭 구멍이 맞는 나사 하나를 찾아 끼웠다. 덕분에 뚜껑 손잡이 든든해 좋았다. 그랬는데 이 나사는 녹이 슨다는 것. 설거지를 하든, 음식을 끓이든 항상 물과 불이 가까울 운명을 타고난 것이 냄비인데 녹이 스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찬장행. 나사 하나를 찾을 때까지 잠시 쉬도록 하자. 쇠의 성질을 모르는 사람이 빈 구석 하나 메웠다고 그리 좋았다.
퀼트 하는 지인을 따라 퀼트샵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예쁘게 완성된 가방을 보니 탐이 나서 가격을 물었더니 몇십만 원 한다. 도안과 재료를 사면 1/4 가격이라기에 덥석 샀다. 그 후 몇 달은 나뭇잎 도안을 자르고 바느질하느라 고생깨나 했다. 만들어놓고 보니 스스로 대견하고 흐뭇해 그 후로도 엄마 가방, 아이 가방, 올케와 조카 것까지 만들면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투리 천이 늘었는데 버리기가 아까워 방석을 만들었다. 물론 손바느질. 도톰한 천, 성근 천, 무늬도 모양도 각각인 천을 이어 붙인다. 어두운 색 곁엔 밝은 색을 두었으면 좋겠고, 두꺼운 천에 너무 얇은 천을 이웃하면 바느질이 어렵다. 재질은 달라도 직조의 형태는 같기에 서로에 기대가며 빈 틈을 메워간다. 바늘이 길거나 굵어선 안 되는 건 당연지사다. 혼자라면 자투리로 남았을 이들의 쓸모가 아름답다.
홀로 견디는 것은 없다. 복잡한 세상은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다. 어떤 성질을 타고났건, 그 성질과 어울리든 말든 누군가의 빈 틈과 나의 빈틈이 소용이 닿는 대로 메워진다. 전기가 흐르는 것은 절연체로 다른 것과 만나고, 홈이 파인 무감한 돌은 흙에 담긴 생명을 키우기도 하며, 찌그러진 양은대야는 빗물받이나 장독 뚜껑이 되기도 한다. 콘크리트 보도블록은 그의 틈에서 자라는 푸른 생명으로 숨을 쉬며 푸름을 지지한다. 플라스틱이 삼베 구멍으로 새 삶을 얻는 것을 본 후로 생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꿈을 꾼다. 제 성질을 잃지 않고도, 처음 마음대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