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거미
소피는 뜨개질 바구니에서 나와 넓은 창가로 기어올라갔어요. 은실같이 고운 달빛이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어요. (…) '저 달빛으로 아기 담요를 짜야겠군, 물론 별빛도 조금 섞어서 말이야.' 담요를 짜기 시작하자 자꾸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어요. 소피는 그 모든 것을 넣어 담요를 짜기 시작했어요. 향기로운 솔잎 이슬조각 밤의 도깨비불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런 눈송이 (…) 막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소피는 담요의 마지막 귀퉁이를 짜고 있었어요. 그 마지막 귀퉁이에 바로 자신의 가슴을 넣고 있었지요.
『소피의 달빛담요』 에일린 스피넬리 글 · 제인 다이어 그림 · 파란자전거
점심을 먹고 나면 잠깐 도서관 앞 천변을 걷는다. 늘 걷는 길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날마다 새롭다. 오늘은 바느질을 기가 막히게 한 거미를 만났다. 보통 거미가 아닌데? 가까이 가서 보니 웬걸 체구가 자그마하다. 저보다 더 크고 왕성한 거미를 많이 봤지만, 이런 바느질은 처음이다. 애들 자랄 때 넘어져 쓸린 바지를 들고 세탁소 가면 멋 부림 없이 해줬을 만한 딱 그 재봉틀 솜씨다. 바느질은 사람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여긴 내 자리. 란 표시가 호기롭다. 열 손가락 가지고도 재봉틀 한 번 못 돌려본 나는 달빛별빛 넣은 짜깁기 모양을 보며 감탄한다. 잎과 잎사이, 사방의 허공을 가늠하며 곡예했을 그의 경계가 사뭇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탄탄한 조직의 수장이 되어 버티고 있는 모습은 내게 '기운 빠진 네 그 울타리 손 볼 때 좀 되지 않았어?' 묻는 모습이다.
도톰한 양말이 필요해 찾아 꺼내보니 엄지발가락 끝에 작은 구멍이다. 구멍 난 양말 꿰매 신은지 오래라지만 멀리 출장 가는 남편에게 이 양말이 꼭 필요했기에 손가락을 넣어 구멍을 찾아 꿰맨다. 엄마 하시던 대로 동그란 구멍의 왼쪽 오른쪽, 위아래 그리고 남은 구석들을 얽고섥어서. 기술 따로 필요 없이 내 맘대로 인 바느질에 달빛별빛커녕 무념무상도 힘들다. 꼭 여기만 이러더라, 발톱 좀 제때 깎으라니까. 한여름에 꼭 이걸 신어야겠다니, 하는 현실적인 불만이 가득이다 보니. 학창 시절 가사 시간에 온갖 바느질 방법을 배웠다. 홈질, 박음질, 감침질, 공그르기 넣어가며 작은 저고리 만들기 실기 시험도 봤다. 자르고, 시치고, 솔기 만들어 가르고, 누르고, 뒤집어 가며 작품이란 걸 만든 적이 있다. 손이 야무진 아이는 만들어 내놓은 모양이 주인 닮아 참 반듯했지. 구멍 난 양말 하나쯤 바느질이 무슨 대수라고 멀리 가는 이 안부는 고사하고 불만인가.
옷을 만들어 입던 시절엔 기성복을 사 입는 지금보다 몇 배의 품이 들었을 테다. 기성복은 유행이라는 게 있고, 취향이라는 것도 있어서 내 쓸모와 필요에 따라 사 입는다. 언젠가 통 넓은 청바지를 사러 갔을 때 요즘은 그런 바지 안 나와요, 하던 때도 있었다. 스키니 바지가 한참 유행이었을 때라. 몸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맵시 있는 품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으로는 한복이나 개량복만 한 게 없는데 결혼식 때가 아니면 한복은 입을 일이 없다. 올초에 엄마가 다녀가시면서 큰 아이에게 묻는다. "할머니가 엄마 결혼식 때 한복 안에 입었던 색동 속바지가 있는데 잠옷으로 입을려?" "엄마는, 그걸 요새 누가 입는다고…" 안 입으면 당신이 입으면 된다고 꺼내놓은 색동바지. 보통 하얗거나 연분홍인 속치마나 속바지를 입었을 건데 한복 안에 이런 화려한 속바지를 어떻게 입으셨어?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 한복 사이로 언듯언듯 비치는 모양새가 예쁘잖니. 딸은 그날 색동 바지를 입고 집안을 누벼 할머니 맘을 달랬음은 물론이고, 지금 내 나이보다 젊었던 엄마는 잠시 딸을 시집보내던 그날의 엄마가 된다.
한 마리 거미가 여러 생각을 불러온다. 요즘은 물자가 흔해선지 바느질할 일이 잘 없다. 재봉틀로 간단한 걸 만들거나 취미로 퀼트나 자수에 실 놓는 게 아니면 모를까. 시간 들이게 생긴 바느질감은 대부분 세탁소행이지 않을까. 색동을 찾아보니 오래된 역사도 역사려니와 품은 뜻이 깊다. 색동 속, 오방색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와 같은 우주적 에너지를 말하며, 오방색(오행의 기운과 직결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사용을 통해 ‘음양의 조화’나 ‘오행의 조화’ 또는 ‘오복(五福)의 구비’를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이 담긴 장식 문화일 수 있다. 오방색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황(黃)은 흙(土)으로 고귀한 색이었으며 청(靑)은 나무(木)에 해당해 봄의 색이자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비는 의미로 쓰였다. 백(白)은 오행 중, 금(金)으로 결백·순결 등을 뜻하였으며 적(赤)은 불(火)로, 애정이나 생성 등 벽사의 색으로 자주 쓰였다. 마지막 흑(黑)은 물(水)로서 인간의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음양오행’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색들은 신부의 연지곤지에도, 어린아이 색동저고리에도, 음식 위 다소곳이 오른 고명에도 깃들어있다. 각각 귀신을 쫓거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등 의미를 갖고 말이다.
<다양성의 조화를 품은, 1500년의 색동> 문화재청에서 발췌
엄마가 색동의 심오한 뜻을 알고 입으셨을까만, 오래전 색동의 헝겊을 이어 붙여 옷을 만든 이는 바느질 땀땀의 시간마다에 무병장수와 구복의 기원을 담았다. 시간을 들이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 있지만, 나름의 뜻이 있다.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뜸을 들여야 마침 알맞은 음식이 있듯이, 수천 번 쓸려야 누름돌 될 그릇이 되듯이. 옷이나 음식이나 뚝딱 완성품을 마주하는 순간을 사는 우리지만 옷 짓는 거 하나에도, 음식의 고명 하나에도 천천히 흘렀을 가슴들을 잊지 말자.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을 뿐 세상의 누구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자기 할 일로 열심이니 말이다. 구석은 그래서 한 번 더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