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눈을 떠 세상을 보자
택배 올 거야. 제주도에서 생선이 올라올 거라고 며칠 전 남편이 말했다. 무슨 생선? 갈친가..옥돔인가.. 여하튼 올 거야. 알겠다고 했던 참. 딱 마침한 크기로, 꼼꼼하게 포장되어 온 택배상자를 연다. 잘 정돈된 갈치거나 옥돔이겠거니 생각했다. 웬걸, 먹음직스러운 노란 조기가 반긴다. 상자 크기를 가늠하며 양을 살펴보려니 서로 나란히 배를 대고 누워 있는 이들을 떼어내기가 영 쉽지 않다. 두어 시간 방치. 한 끼 먹기 딱 알맞은 크기의 조기들을 떼어내다 보니 간이 안 된 생물이네, 생각이 미친다. 어디 보자, 한 줄 열다섯 마리씩 세 단, 마흔다섯.. 마리다. 납작하게 진공포장된 갈치나 옥돔이었으면 이런 마리 수는 계산도 되지 않을 양이다. 정리도 쉬웠을 테고. 보고 있자니 대략 난감이네. 일단 다섯 마리씩 소분해 서른 마리는 냉동실행하고, 열다섯 마리만 어떻게 해보기로 하자.
베란다에 퍼질러 앉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눈이 제법 살아있다. 먼바다 어디쯤을 유영하고 있었을까, 삽시간에 어망에 갇혀 땅을 밟고 난 후엔 소용이 없게 돼버린 지느러미를 살핀다. 물에서 좌우균형을 잡으며 한껏 내밀었을 가슴지느러미, 성난 파도에도 흔들림을 최소화하도록 도와주던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빨리 도망치거나 먹이를 잡으려면 추진력도 필요했을 꼬리지느러미. 혹시라도 한 눈 팔다 무리에서 이탈하면 안 되니 꼭 필요했을 지느러미들을 인정 없이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한다. 피부를 보호하며 바다의 온도를 따라 흘렀을 비늘도 결의 반대로 벗겨낸다. 퍼들거리던 삶에 살이 제법 올랐다. 잠시, 그의 삶을 위로한다.
있는 힘을 다해 무리를 따르다가 때가 오면 다른 세상을 밟고 싶다는 남다른 꿈을 꾼 적 있을까. 이들에겐 바다가 우주의 전부였을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세상 유일한 생명의 땅일 거라 생각하듯. 나 너머의 세상을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런 우주들이 어쩌면 여기저기 있을지 모른다. 바다생명들의 우주. 땅과 그들을 품은 지구라는 우주. 그들의 그들을 품는 보이지 않는 우주, 끝없는 공간. 내 눈과 가슴, 머리로 헤아려 보는 우주는 지극히 내 반경 안에서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 공간 운영도 어떨 땐 벅찰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내 앞에 놓인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먼 데는 그 이후에나 다다를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일 거다.
생선의 지느러미처럼 살아가는 날들,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는 날들 속에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꼬리를 친 적이 있고, 나도 모르게 떨어진 비늘 틈으로 아픔이 오기도 했다. 한때는 한 점에서 멀리로 거미줄을 질기게도 쳤고, 누더기 같은 내 얘기를 가만히 들었을 느티나무를 생각하면 그만 부끄러워 그의 눈과 입을 막고도 싶었다. 복잡하다면 한없이 복잡한 속이었다. 그걸 설명하자면 나는 주변의 무엇으로도 치환 가능한 존재가 된다.
나는 나만큼의 수를 거듭 곱한 수. 어디까지 곱하게 될지는 모른다. 어떨 땐 껍질을 씌워 거듭된 수 하나를 벗어버리고도 나일 숫자. 껍질 속에 꽁꽁 숨어도 나를 벗어날 수는 없다. 때로 투머치 오지라퍼인 까닭에 제곱을 자청했다 상처받고 그럴 때마다 껍질을 하나씩 벗기도 한다. 나는 또 미지의 수를 보았을 때 오고 가는 한 번의 계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차방정식으로 살고 싶은 사람. 어떨 땐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단세포 생물이고도 싶다. 그것도 세포 하나만으로 단순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더 적극적이고 싶은 원시생물. 초록이 흔들릴 땐 나도 광합성이 필요한 거 같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물인 까닭에 그 중간 어디쯤이 있다면 그렇게도 살고 싶다. 추운 눈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을 거라는 믿음 하나는 철저한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경이로운 사람이지만, 눈밭에 맨발로 서 있기는 너무도 추운 사람. 그래서 눈발 날리는 봄에 꽃 피우기 위한 노고를 조금은 이해한다. 나는 36.5도가 뜨거운 개구리. 욱했다, 풀 죽기를 고, 중, 저음으로 반복하며 울어대는 양서류에 가깝기도 한 사람.
너는 스스로 넘는 스무고개, 결정 하나가 대체 뭐라고 묻고 또 묻는 결정장애자냐,라고 누가 말했다. 그래 나는 4분 쉼표보다 멀고 16분 쉼표보다는 가까운 8분 쉼표다, 내 맘대로 깜박거리는 시간과 틈이 필요한 존재라고. 웃기지 말라고? 내 맘이야. 그러니 나는 한 박자 늦어 함께 웃지 못할 수도 있는 뒷북애호가다. 나는 유영하는 나선형 지느러미. 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 세상이 물이라면 되도록 부딪침 없이 흐르고 싶은 사람. 간혹 누가 날 흔들어도 모를 만큼, 물의 압력으로 가벼워지는 몸의 질량을 거뜬히 견디고 싶은 사람. 때로 나는 벽돌 한 장. 빈 구석 한 곳을 때려 박거나 전체의 무게를 벽돌 한 장만큼은 기꺼이 나눌 용의가 있는 사람. 나는 내 몸의 어딘가, 또는 무엇이 기록으로 남겨질지 고민하는 딱 지난 시간만큼의 고민 퇴적층. 나는 진행형 미드나잇. 현실보다 이상, 생각 앞에 실천이 어려운 한밤중의 정중앙. 어쩌면 밥도 얻어먹지 못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