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춘 무청시래기

수고롭지만 부지런한

by 달랑무

무청시래기를 좋아한다. 김장철이면 딴딴하게 잘 여문 싱싱한 무를 산다. 그것도 무청이 펄펄 살아있는 놈으로. 그것으론 부족해서 무청만 잘라놓은 걸 함께 사기도 한다. 김장을 하느라 멀미가 나면 그는 내 신경 밖이 된다. 김장여독을 며칠 풀고 난 며칠 후에야 시들려는 그를 일으켜 세워 흙을 턴다. 그에게 의지했던 것들이 부스러기처럼 떨어진다. 그를 집 삼았던 달팽이도 꾸물텅 떨어진다. 몇 차례 씻고 팔팔 끓는 물에 구겨 넣어 삶는다. 그냥 말려도 되지만 먹을 때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손이 덜 가는 게 좋아서 그렇게 한다. 삶아 숨이 죽은 애들을 옷걸이에 걸어 말린다. 베란다는 며칠 그들의 마르는 냄새로 요란하다. 이 냄새가 잦아들 때 내 겨울 준비는 끝난다. 삶아 말린 애들은 누구보다 강해서 그들을 거둘 땐 조심해야 한다. 끝 순이 무성했던 부분이 툭툭 부서져 내리기 때문이다. 살살 달래어 보관을 한다.


들인 품에 비해 시래기는 혼자서 맛을 내지 못한다. 여러 번 푹 삶아 질긴 겉껍질을 벗겨내 말끔해진 그들의 속살 사이사이로 굵은 멸치와 다시마의 바다가 출렁대야 한다. 몇 년 묵은 된장으로 간을 하고 그의 짠기를 들깻가루 한 숟갈로 중화시킨다. 마지막에 들기름 휘 둘러 모든 이들의 주장을 잠재운다. 그런 과정 후에야 시래기는 그야말로 별미가 된다. 미각이 예민하지 않은 나로선 이 과정을 기꺼이 겪으며 스스로 해 먹이는 나의 好를 대견해한다. 이만하면 됐어, 나이를 먹는 건 이런 걸 거야, 수고롭지만 부지런히 나를 돌보는 것. 변해가는 입맛도 땅을 삼키며 자란 그의 살진 풍상을 외면하진 못하는구나, 혼잣말이 늘어가지만 말이다.


10월 중순쯤, 로컬푸드 갔다가 싱싱한 무청다발을 봤다. 김장철은 아직 남았지만 그때까지 뭔가 입맛 도는 게 있나 싶었을 때 본 거라 이걸로 김칠 할까 싶었다. 무청을 살짝 눌러보니 질긴 거 같진 않아서 배추 한 통이랑 버무려 먹자고 샀다. 무청 뚝뚝 분지르며 하나, 배추 한 통 칼로 치며 하나 절여놓고 김치 양념을 만들었다. 다 만들고 보니 작년 김장 때 넣다 남은 생새우 생각이 난다. 냉동실에 있는 걸 꺼내 얼어있는 새우를 덜어낸다는 게 그만 손을 다치고 말았다. 흐린 일요일이었다. 배추를 절이며 올려다본 꾸물거리는 하늘과 이거 얼른 해놓고 다른 걸 해야 할 생각과 요즘 자꾸 아프다는 엄마 병원 예약할 생각과 이런저런 생각이 오고 가는 가운데.


일요일엔 종합병원 응급실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식염수를 쏟아가며 상처를 본 의사는 접합 담당의가 오늘 없다며 수지접합병원을 소개한다. 병원을 옮기고 2박 3일 입원했다. 그러고도 꼬박 보름을 손을 쓰지 못한 채 보냈다. 오른손잡이인데 오른손을 다쳤느냐고 함께 입원한 이가 물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러게요 일이 이렇게 되려 니요, 하고 말았다. 마음이 급하고 생각이 많으면 하고 있는 일에 집중이 안 된다. 눈감고도 떡을 썰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대체 어떤 경지였던 걸까. 해오던 일이라 습관처럼 움직이는 손을 믿었던 건가. 십수 년 하던 일이다. 베이는 일 다반사여도 밴드 붙이며 슬쩍슬쩍 지나가던 길이다.


잠시 멈췄어야 했나 보다. 한 박자 천천히 했을 걸 했다. 살면서 또 하나의 상처를 보탠다. 생활의 상처치곤 뜬금없지만, 실은 아팠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또 김치야? 우리 집에 김치 먹는 사람, 한 사람밖에 더 있어? 아빠." 없으면 사 먹으면 된다는 딸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던 차다. 웃음 반, 걱정 반을 하던 딸이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정신이 없어. 집에서도 뛰어다니잖아, 봐봐. 이젠 이런 거 그만하고 엄마를 위해 사세요.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섭섭했다. 딸이 보기에 빈껍데기만 남은 거처럼 보여도 나는 사느라고 살았다. 그러자, 이제 딸 말을 들어야지. 나를 거울처럼 봐온 딸이니 딸을 생각해서라도. 손을 다쳤으니 올해는 김장 건너뛰겠다고 소리친 날 위해 팔순 노모가 김장김치 몇 포기 보내오셨다. 엄마가 거울이던 나다. 나를 보고 있는 엄마다, 시래기 같은 몸으로 딸을 살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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