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이기주의자
냉이를 다듬는다. 엊그제 냉잇국을 끓여 드셨다는 엄마를 떠올린다. 누군가 해주는 밥이면 맛있게 먹었을 반찬이나 밥은 내가 하다 보면 시장기가 가신다. 올해 팔순, 밥 하기가 얼마나 싫을까. 다른 데라곤 눈을 돌린 적이 없이 매일 장을 보고, 다듬고, 씻고, 자르고 정리하며 무슨 반찬을 하면 맛있을까 생각에 평생을 살아온 분에게 그동안 잘 사셨다고, 혹은 요즘 살이에 비추어 그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평가의 말을 나는 감히 입에 올릴 수가 없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그게 왜 하필 나냐'는 마음 일거든 하지 않으면 된다. 다른 데 눈 돌릴 줄 몰라서 안 한 거냐고, 평생을 돈도 안 되는 일에 바친 당신 안 됐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생을 똑똑하고 야무지게 잘 살아낸 사람.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일 거다.
올해 초 서점에는『오직 딱 한 해만, 다정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이 나와 있던데 세상엔 이기주의자가 되기 힘든 엄마 같은 사람들이 아직 많은가 보다. 열두 번의 미션 중에는 먹기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들에 의식적으로 애정을 쏟아보라는 주문이다. 책의 제목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주는 다정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보기를 엄마께 권하고 있는 중이다. 안된 일이 있으면 우선 당신 탓으로 여기며 살아오신 엄마의 시간이 되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노래가 될까, 춤이, 장구가 될까, 그림일까, 엄마의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계절을 살고, 시간을 사는 엄마들은 계절에 따라 할 일이 있고, 시간 따라 할 일이 있다. 먹어야 산다는 말이 맞다면. '엄마들'이라는 말은 누구라도 밥을 챙기는 사람을 향한 지칭이다. 계절 쉼 없이 흘러서 열매가 나오는 철엔 열매절임을 하고, 새순이 나는 날엔 새순 숙회를 한다. 계절을 앞서 알리는 새순들을 보고서야 철을 알고 주섬주섬 봄을 맞는 나는 그에 대면 한참 무디고 게으른 생명이다. 열무가 나올 땐 열무 반찬, 쇠미역 한참일 땐 초고추장 쌈 싸 먹고, 조선호박 맛있을 땐 호박조림에, 알배기 주꾸미, 꽃게철엔 탕이며 게장…. 먹거리 준비로 입과 손이 바쁘다. 제철이 아니면 하지 못하는 일들은 이렇게 계절마다 줄을 서 기다린다.
매일 나가 사 먹기도, 시켜 먹기에도 뭔가 채워지지 않고 허전하다면 호박 하나 들고 뚝딱 뚝딱 움직여 보자. 세모, 네모, 동그라미 내 뜻대로 동강을 내어 전을 부쳐도 좋고, 쪄먹어도 좋다. 어떻게든 품이 드는 일이다. 시간을 들이는 일이고. 사 먹는 일도 누군가 시간을 내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사람이 있으니 가능하다. 개수대 앞에서 지지고 볶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은 숭고하다. 지지고 볶는 일이 어디 음식만의 일일까. 사는 일에도 지지고 볶는다는 말을 하는데.
그러고 보면 우린 모든 존재의 노고를 먹고산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자란 푸성귀들이 그렇고, 땅과 들, 바다에서 자라는 존재들이 그렇다.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생명을 밥상에 올리는 우리다. 그들도 때로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게으름, 나와 같은 한눈팔기 원했던 존재였을지 몰라, 생각하면 어떤가. 왜 하필 나인지를 묻기 전에 찬물에 손을 먼저 담근 사람, 자기 자리를 떠나 오롯이 제 삶을 내준 존재들의 시간과 마음씀에 감사하자. 선선히 내놓았으므로 살이 오른 우리다.
구석구석 손 볼 데가 많은 냉이는 뿌리손질부터 잔뿌리랑 몸이 엉켜있어 제대로 씻지 않으면 모래가 서걱 일 수 있어서 깨끗이 다듬는다. 뿌리도 함께 먹어야 기운이 나지. 뿌리 끝도 끝이지만, 싹을 틔우느라 흙의 경계에서 어지간히 가려웠을 곳을 긁어대느라 한참을 뒤적였다. 다시마 국물 내고 된장 풀어 조개를 넣고 시원하게 끓인다. 잘 먹겠습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그림책 :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한성옥, 윤성남 / 사계절 / 201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소울푸드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성석제 외 / 청어람미디어 / 2011
『오직 딱 한 해만, 다정한 이기주의자』/ 베레나 카를, 안네 오토 / 앵글북스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