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꽃이 필 때

가지를 자르며

by 달랑무


가지를 자르며 생각한다. 베이는 아픔이 없다면 연한 너의 속살을 어찌 보일까. 베지 않았다면 아마 너를 영영 ‘겉과 속이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 연근을 자르며 또 생각한다. 진흙 속에서 숨을 쉬자면 아마 이 방법 밖에 없었을 거야.


어느 통계에선가 직장이 있는 남녀에게 '살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냐'라고 물었을 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또 요즘 젊은 세대는 문자를 비롯한 짧은 메시지에 익숙한 탓에 예고 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기가 어렵다는 호소를 한다는 기사도 봤다. '여보세요 전화가 무서운 MZ세대 SNS에 익숙, 폰포비아 확산'이라는 제하의 기사였다.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가 거의 없다 보니 집전화는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췄다. 누가 어디서 뭐하는지 실시간물을 수 있는 요즘은 집전화를 통해 안부를 전하거나 묻는 건 시간낭비 같아졌다. 개인 폰으로 모르는 번호가 뜨면 전화를 안 받기도 하고, 폰도 알아서 '저장되지 않은 번호이니 유의하라'는 문자를 띄운다. 세상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 앱만 다운로드하여 놓으면 나를 거치기 전에 알아서 차단해 주는 프로그래밍은 우리가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거다.


썼다 지울 수 있는 간단한 질문과 답에 익숙해져서 어디로 튈지 알지 못하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상대적으로 불안한 건 MZ세대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분자처럼 흩어지는 많은 사람들 중 네 맘이 내 맘처럼 통하는 사람을 어찌 알아볼까. 몇 마디 섞는 것으로 사람을 안다 할 수 없고, 평생을 산 부부도 뜬금없이 남 같을 때가 있는데 말이다.


당신이 편한 사람이면 좋겠다, 당신에게도 내가 불편한 사람이 아니면 좋겠고. 무언의 기대다. 되도록 말을 골라서 하고, 내 주장을 한 번쯤 꺾어보는 것은 그런 뜻이다.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기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바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인격이 된, 도덕적인, 자기 삶을 사랑하는, 다른 이를 배려하는, 능력이 좋은, 권력이 있는, 품행이 방정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어떤 걸까. 나에게 좋은 사람이 너에겐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는 여지는 남겨두자. 보편적인 기준 물론 있지만, 관계에 따라 그 대상이 내게 얼마만 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매겨지는 '가치'의 기준이란 것도 있으니.


"사람들이 타인을 보는 방식은 집이나 나무, 별을 볼 때와 사뭇 다르다. 이들을 특정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기 내부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기대를 가지고 보는 것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


나무를 보듯이 너를 볼 수 있다면 , 별을 보듯 너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특정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니 어렵다. 당신도 나와 같기를, 내 기대에 닿는 사람이기를 생각하는 순간 크고 작은 불편함이 온다. 거친 몸에서 꽃봉오리를 내는 나무에 대한 찬탄이 절로 나오는 것은 그가 나와 다른 존재이기에 가능하다. 깜깜한 밤하늘 수없는 몇억 광년의 세계도 나는 닿을 수 없으니 동경한다. 관계의 값을 매기는 평가지표가 그들에겐 없다. 또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드는 존재인지 무슨 방법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대체 나무와 나 사이에, 별과 나 사이에 치열한 계산법이란 게 어디 있을 법이나 한가.


가지와 연근에게 : 나무와 별을 보듯 너를 본다. 같은 모양이 없다, 같은 색깔도, 구멍도 없다. 겉과 속이 다르다. 질기고 두꺼운 껍질 속 연한 살도, 구멍마다 다른 숨을 쉬었을 연뿌리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구나. 그렇듯이 사람도. 가지 같은, 연근 같은, 나무 같은, 별 같은 이유로 산다. 자기 모습으로 사는 사람에게 다수 평가의 잣대를 대는 어떤 날은 슬프다. 베이지 않고, 베어보지 않고는 잘 모르는 게 사람살이라지만 때로는 계산을 저울질하는 내가 아프다. 건방진 말일까, 그래도 우리 젊은이들은 부모보다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서로의 모습마다 다 다른 저마다의 꽃이 필 때가 곧 있을 거라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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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으면 좋은 책 :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르칼 메르시어 / 김영사 / 들녘 / 2007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 플래너리 오코너 / 문학수첩 / 2014

『내 생애 단 한 번』 / 장영희 / 샘터사 / 2010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 문학동네 / 2015

『사유식탁』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 오렌지디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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