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옥수수
잘 안 보이는 세계에서 두 딸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여느 엄마들처럼 날이면 날마다 엄청나게 위대한 일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제 머릿속 상상과 생각들을 보이게 만드는 일도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지극히 작고 연약한 것들에게도 나름의 힘이 있습니다. 볼품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빛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거든요. 고구마처럼요.
그림책『고구마구마』『고구마유』· 사이다 · 반달
작가의 말
햇고구마가 요즘 하나둘 보인다. 고구마를 좋아한다. 겨울엔 고구마가 식탁 터줏대감이었다. 남편 친구들이 어쩌다 집에 오는 날이면 "이 집은 어째 올 때마다 구황작물이 있네"했다. 추운 겨울밤 노곤노곤하게 까부라져 꿀 진득한 고구마를 안 좋아는 사람도 있구나, 남들도 나와 같을 거란 생각은 그때로부터 멀어졌다. 한때는 sns 별칭이 고구마기도 했다. 뭘로 할까 고민하다 머리 굴릴 거 없이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로 하자 했다.
때는 작년 꽃피기 전 춘삼월. 꽃 피기 아직 이르기도 할 때 운동 다녀오다 집 앞 건널목 트럭에서 때깔 자르르한 고구마를 만났다. 야무져 보이는 고구마 한 봉지에 만원. 보통은 동네 청과물 가게에서 사오천 원 안팎인 걸 생각할 때 많이 비싼 고구마였다. 통통하지 않고 길쭉하기만 하거나 너무 동글 거리는 것들은 오천 원이었는데 이왕 먹을 거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한 걸로 하자 하고 큰돈을 냉큼 썼다. 자기 물건 파는 사람치고 좋은 게 아니라거나 맛없는 거라는 사람 없지만, 이 고구마는 특별히 맛있는 거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니 더욱 솔깃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쓸데없이 막욕심을 부리게 되는 구황작물 두 가지는 고구마와 옥수수다. 마트 입구에서부터 맥반석에 몸을 던진 고구마 굽는 냄새가 나면 벌름거리는 코를 들고 고구마 매대부터 우선 직행이다. 남은 게 한 알이라도 일단 사놓고 장을 보기 시작한다. 김을 잔뜩 올리며 삶는 옥수수를 봐도 처지는 비슷하다. 지금 당장 먹고 싶지 않더라도 오감을 자극하는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막 수확해 진열대 위에서 푸른 잎 빛을 내거나 말간 얼굴 내밀고 있는 걸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스쳐 지났다가도 어느새 다시 그 자리 앞에 서 있다. 고구마와 옥수수는 이제 구황작물이라기보다 출출할 때 아쉬운 간식이라 그때를 대비해 사두는 거라 위안 삼으며 내 손에 이끌리기 수십 해.
어린 딸은 자주 아팠다.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다 진료가 끝나 나오면 시장 입구 약국 앞에선 찐 옥수수 단내가 진동을 했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온 길이라 배가 고팠지만 사 먹지 못하고 망설였다. 찐 옥수수 두세 개 한 묶음에 이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차비를 생각하며 돌아섰다. 그렇게까지야, 하는 생각은 지금에나 한다. 당장 필요한 생필품이 아니면 계획에 없던 물건을 계획 없이 사는 일은 없었다. 필요한 것조차 들었다 놨다를 여러 번 하다 내려놓기 다반사. 그래선지 나이 들어 옥수수 욕심은 그 탓이라 여긴다. 먹부림이 지나쳤는지 요즘 좀 시들해지긴 했지만, 고구마와 옥수수를 사는 건 보약 같은 즐거움, 쟁여두는 걸 포기하진 않는다.
당연히 맛있을, 사 온 고구마를 선선한 베란다에 두고 며칠이 지났다. 사 오자마자 먹어 없애는 건 두고 보며 벼르는 맛을 포기하는 일이므로 며칠은 애를 태우며 시들시들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야 쫀득하니 더 달다. 지금쯤이면 마침 궈 먹으면 맛있겠다 싶어 봉지를 열었다. 그런데 뭔가 풀썩거린다. 어라?! 다 녹아버렸네!!! 녹아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물러서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꺼내려고 손을 넣으니 고구마 속으로 손이 쑥 들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해 보이다니. 물도 하나 안 생기고 곰팡이가 피지도 않았다. 다른 걸 얼른 만져보니 두 알 남기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다 버리게 생겼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얼었던 고구마가 아닌 바에야 이럴 수가. 아끼다 그만 똥 됐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베란다를 오며 가며 약을 올렸다. 잘 있는지 눈요기했고, 아직 꽤 단단한 모양을 스캔만 했다.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비싸게 산 내 고구마 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 애타게 만들어 내 입을 호사시켜줄 날들만 기다렸다. 고구마에게 몹쓸 짓을 하는지 모른 주인은 그가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수분 품은 야들한 속이 비닐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음을 몰랐던 주인은 그의 겉모습을 보며 아직 살아있다 여겼고, 튼튼하다 믿었다. 그리고 잊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 = '사실'이라는 정의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일을 솔직하게 말할 때도 사실이란 말을 쓴다. 비닐 속에서 고구마가 썩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겉모습이 멀쩡한 것을 본 주인은 고구마가 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 '내 생각'을 믿은 거지 사실을 믿은 게 아니다. 비닐봉지에 둔 채로 방심한 탓이 크지만, 겉모습이 멀쩡하면 잘 있는 거라는 생각을 믿은 나는 이맘때 고구마 속을 잘 알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갖은 애를 태우며 그가 비닐 속에서 녹아갈 때까지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를 안다고 생각했다. 빛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은 그를. 무수한 겉모습을 안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 나는 얼마나 많은 오류를 사실이라고 우기며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