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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Feb 09. 2017

『읽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 위즈덤하우스

★★★☆

2017.2.7~8

한 줄 댓글: 독서를 통해 진정한 나와 만나자.


  3주 전쯤 일산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었다. 사려고 메모해둔 책들을 찾던 중 눈에 확 띈 책이 하나 있었다. 『읽는 인간』이라는 책이다. 독서가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느끼고 있고, 또 독서를 주제로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을 구상하던 나에게 이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다. 우선 내 페이스북 페이지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독서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가치관을 비교해보고 싶다는 다소 건방진 생각도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이렇게 빨리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며칠 전 50페이지 정도를 잠깐 읽어봤는데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잘 읽히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봤다. 우선 이 책 안에서 작가가 소개한 책들 중 내가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이 책은 자신의 50년 독서 인생에 대한 것인데, 작가 자신이 '어떤 책에서 감명을 받았고, 그 책을 모티브로 쓴 책은 무엇이다.'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소개된 여러 책들 중 내가 읽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오에 겐자부로가 쓴 소설조차 단 한편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주로 다루는 작가인지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책을 읽었으니 잘 읽히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저 노벨문학상이라는 것만 보고 이 작가가 쓴 책이니 무조건 나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책장에 다시 꽂으며 이 작가가 쓴 소설을 세 편 이상 읽고(작가는 3년을 주기로 한 작가의 책만 읽는다고 했으나 아직 크게 와 닿지 않고 나한테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세 편으로 나름 타협점을 찾음), 또 작가가 소개한 책들 중 한글로 번역된 것들을 모두 읽고 나서 읽기로 했다.

  책장에 꽂은 지 하루 만에 이 책을 다시 꺼냈다. 지금은 완독 후 독후감까지 쓰는 중이다. 이렇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제 페이스북 페이지에 첫 게시물을 올렸다. 브런치에 있는 글을 공유하면서 첫 게시물을 올린 것이다. 게시물을 올리자 자동으로 페이스북 페이지가 공개로 전환되었다.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다.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페이스북 페이지가 공개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미루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비공개로 돌리지 않았다. 또 사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완벽한 상태로 시작하는 것은 프로만이 가능한 것인데 나는 초보자 주제에 프로다운 완벽함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시작하지도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초보자는 일을 진행해나가면서 성장하면 되는 것이다. '페이지가 공개됐으니 정체성을 확립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완독 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공감되지 않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노벨문학상 작가라지만 읽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가 감명 깊게 읽은 책과 작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할 때는 공감하기 힘들었지만,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어디서 모티브를 얻는지, 또 책을 읽을 때 어떤 자세로 읽는지 등은 정말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이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을 포함한 실제 주변 인물을 자신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실제 인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서 작품에 녹여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겪은 일화를 바탕으로 쓰거나 작품 주인공에 자기 자신이 투영되어 있을 때 그 작품을 우리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부른다. 아직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본인 설명에 의하면 그는 자전적 소설을 넘어 수필에 가까운 소설을 쓰는 작가다. 여기 책 속의 한 문단을 보자. '한편 독서를 통해 자신의 주제나 문체가 바뀌어가고 변해가는 문학적 인생을 사는 동안, 실제 제 인생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제 소설이 완전히 드라마틱하게 변했죠. 장남 히카리가 두뇌 기형으로 태어나면서 제게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중략)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에 관해 쓰는 것이었습니다. 기형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고, 젊은 아버지가 이런저런 고생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한 역경을 뛰어넘어 제게 주어진 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개인적인 체험》입니다.'(69p) 그는 이렇게 자신과 아들의 일을 소설에 쓰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시작한 자전적 소설을 지금까지도 쭉 쓰고 있다고 말한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 읽기 중 가장 독특한 점은 3년을 주기로 한 작가의 작품과 연구서를 깊게 판다는 것이다(그는 이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 윌리엄 블레이크,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오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3년씩 대상을 바꿔가며 책을 읽으라고 했던 와타나베 선생의 조언에 따른'(72p)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함으로써 그 작가의 문체나 스타일을 완전히 소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작가들의 스타일과 문체를 소화한 후 그것들을 자신의 개성으로 새롭게 재창조해내는 것이 오에 겐자부로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 아닌가 싶다. 보통 스타일과 문체를 소화한다라고 하면, 그저 형식을 따라 하거나 베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것을 창조하는 작가인 것 같다. 아직 그의 작품과 그가 모티브 삼은 작품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에 겐자부로에게서 공감했던 부분은 독서에 대한 그의 가치관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레벨이 아닙니다(이 역시 살아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죽은 지식의 집적을 말합니다. 대형 대학 강의실에서 열리는 지루한 개론 강의를 떠올려 주십시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49~50p) 독서에 대한 내 가치관과 완전하게 같다. 내 페이스북 페이지의 이름은 '생각하는 삶'이다. 책에서 생각거리를 얻고 생각을 통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삶으로 살아낸다면, 주체적이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름을 정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독서라는 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과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망상이나 얕은 생각은 아니구나, 나도 생각하면 꽤 괜찮은 답을 낼 수 있구나'라는 위로도 얻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독서에 대한 마음이 생기길 바랍니다. 함께 독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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