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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Sep 28. 2017

25.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 부키

★★★☆

기간: 2017.9.12,14,18

한 줄 댓글: 내로남불.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고발한 책


    경제학 책이다. 부제를 보지 않으면 사회학이나 철학 책으로 보인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반대말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 하자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이야기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나 해를 입고 쓰러져있다. 이때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그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갔다. 그때 한 사마리아인이 쓰러져있는 사람을 도와준다. 사실 이 시대는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면 곤경에 빠진 사람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때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사마리아인 앞에는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나쁜 사마리아인이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닌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이다.

    이 책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왜곡된 주장에 대해 반론을 펼치고 있다. '선진국은 자유시장주의라는 거짓된 명목으로 후진국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자유시장주의를 따르는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자유시장주의만 한 것이 없다고 외치는 선진국들조차도 자유시장주의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주장이 경제학자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학 관련 최신 서적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이제 이 책의 주장과 근거를 살펴보자. 먼저 1장과 2장은 역사적 사실을 들며 선진국들이 정말 자유시장주의로 성장했는지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3장부터 9장까지는 '경제 발전과 관련 이른바 정통적인 지혜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뒤집기 위해 본격적으로 경제 이론과 역사, 당대의 증거들을 혼합한 논의'(37p)가 전개된다. 즉,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을 경제학 이론과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반박하는 부분이다.

    1장에서는 경제 개발에 성공한 개발도상국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자유주의 무역이 아닌 보호주의 무역으로 성공했다.'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 개발에 성공한 개발도상국들은 거의 모두 보호 관세와 보조금을 비롯한 갖가지 형태의 정부 개입을 활용하는 민족주의적 정책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54p) 그나마 칠레가 신자유주의 전략을 써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칠레조차도 단순한 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제 개발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경쟁력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하면 개발도상국들은 이웃 나라에 1차 산업물만 수출하게 된다. 개발도상국의 기술이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때까지 정부가 그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

    시장을 개방해야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이전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시장을 개방한다고 모든 기술이 다 이전되는 것이 아니다. 핵심 기술은 이미 자국에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기술 이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자유시장주의를 외치는 선진국들이 자국의 핵심 기술에 대해서는 자유시장주의가 아닌 보호주의를 택하고 있는 것만 봐도 굉장한 모순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책 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들이 닥치고 보호주의를 택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한 나라가 정책을 세울 때 다른 나라들의 상황과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개발도상국은 오죽하겠는가.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정책을 형성할 때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구들이 있다. '사악한 삼총사'라고 불리는 IMF, 세계은행, WTO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58p) 이 '사악한 삼총사'가 어떤 식으로 개발도상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 보자. '부자 나라들은 IMF의 금융 원조에 따른 조건으로, 채무국들에게 자국 경제를 조정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나 채권국들에게는 이익이 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많다.'(61p) 부자 나라들은 '사악한 삼총사'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이득을 취하고 있다. '채권자가 조건을 다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조건 설정은 채무의 변제와 관련성이 깊은 영역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채권자가 채무자 인생의 모든 측면들에 개입할 수 있다.'(60p) 굉장히 공감되는 말이다. 내가 은행에 대출을 받았는데 그 조건으로 자는 시간을 5시간 이하로 줄이라고 요구하는 조건은 채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조건이다. 부자 나라들은 이런 식의 조건으로 개발도상국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한다.


    2장에서는 현재 부자나라들이 어떻게 부자나라가 됐는지 역사적 사실을 검토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보호주의 무역을 통해 부자나라가 됐다. 먼저 영국은 '19세기 중반까지 고도의 보호무역 국가였다. 1820년 영국의 경우 수입 공산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45~55%였는데, 저지대국은 6~8%, 독일과 스위스는 8~12%, 프랑스는 20% 남짓이었다. 영국이 무역 정책에 활용한 무기는 관세만이 아니었다. 영국은 식민지에서의 선진적인 제조 활동에 대해 무조건적인 금지령을 내렸다.'(77p) 이렇게 영국은 보호 무역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고 나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이 보호무역을 하지 못하게 자유주의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유치산업 보호에서 가장 선두적인 나라였다. 미국을 예로 들며 링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링컨이라고 하면 게티즈버그 연설과 더불어 노예 해방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해방자'이기 전에 '위대한 보호자'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링컨은 사실 노예 해방보다 유치산업 보호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링컨이 1862년에 노예 제도를 철폐한 것은 도덕적인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조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89p) 굉장히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렇게 현재 부자 나라인 영국과 미국은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의 성장을 막고 있다. 부자나라들이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사다리 걷어차기'인 것이다.


    이후 7개의 장에서는 외국인 투자 규제와 민영화, 특허 보호 등 부자나라들을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 '사다리 걷어차기'인 이유를 들고 있다. 확실한 것은 부자나라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들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사다리 걷어차기'하듯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제 성장을 위해서 보호주의 무역이 아니라 자유시장 무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희망을 논하고 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개발도상국들이 자유시장주의를 택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발생하는 이득 때문이 아니라 이런 정책이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실제로는 어리석은 사마리아인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이 주장에는 완전히 동의하기 힘들다. 이 저자의 주장이 맞다면,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모두 이 저자보다 어리석은 것이 된다. 저자의 자신감이든가 저자가 어리석어 자유시장주의자들을 오해하든가 둘 중에 하나다. 하지만 저자가 책을 통해서 밝힌 자유시장주의에 대한 오해와 견해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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