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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Nov 02. 2017

휴학 2년 반을 돌아보며

이제는 진짜 해야 한다.

    답답하다.

    한심하다.

    열심히 하지 않을 거면 욕심이라도 없던가...


    2015년 여름 6학기까지 마친 후 휴학을 결정했다. 휴학의 목적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해야 돼서가 아니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이 해결해줬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걱정이 없다기보다는 감각이 없다. 400만 원은 큰돈이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치지 않고 대출로 해결됐기 때문에 온전히 내 빚인데도 빚에 대한 감각이 없다. 그렇다고 휴학의 목적이 자격증이나 인턴 같은 스펙 때문도 아니었다. 내 휴학의 목적은 좋아하는 일을 찾는 시간을 얻기 위함이었다. 졸업하기 전에 찾지 못하면 다시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찾으려고 휴학을 했지만, 뚝하고 찾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책이었다. 독서는 전부터 좋아했다. 그렇다고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단지 어릴 때부터 독서가 최고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책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대학교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읽었던 것 같다. 학교 공부를 할 때나 시험 준비를 할 때 틈틈이 책을 읽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리고 공강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겐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주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휴학을 하고 반년 동안은 방향이나 목표 없이 책을 읽었다. 가끔 인터넷으로 세바시 강연을 보거나 목동으로 가서 직접 보기도 했다.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강연자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보니 책이었다. 그들이 모두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책을 낸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남들 앞에 서는 그들이 부러웠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냈다는 것이 멋있었다.


    그렇게 나는 작가를 직업의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강연자로 서는 그들과 다르게 나는 성취한 분야가 없었다.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대학생이자 휴학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뭘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설이나 시를 쓰자니 내가 가진 재능이 두려웠다. 재능이 조금도 없다는 게 밝혀질까 봐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시를 제외하고도 전업작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일단 많이 읽기로 했다. 많이 읽다 보면 답이 보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책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읽었다. 휴학 후 반년이 지난 2016년부터는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읽었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 마라톤에 지원했다. 당연히 풀코스로 신청했다. 1m당 1page로 42,195page를 읽는 것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다. 하루 종일 다른 공부 없이 책만 읽기로 했으니 충분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완주는커녕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집중력이 부족한지 알게 됐을 뿐이다.

    2016년 내내 책을 읽었지만, 겨우 91권 읽었다. 누가 보면 많이 읽었다고, 재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얼마나 형편없는 양인지 알 수 있다. 한 달에 7.5권을 읽은 것이다. 후하게 반올림해서 8권이라고 쳐보자. 그러면 일주일에 2권씩 읽은 셈이다. 한 권을 300page로 계산하면 일주일에 600page를 읽은 것이다. 소설은 1page 읽는데 1분, 철학책이나 생각이 많이 필요한 책들은 2분 정도 걸린다. 모든 책을 1page에 2분으로 잡고 계산해보자. 그러면 일주일 동안 독서하는데 20시간(1,200분)을 보냈다는 계산이 나온다. 평일 하루 중 도서관에 있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다. 밥 먹고 낮잠 자는 시간 빼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10시간이다. 그렇다면 일주일 동안 순수하게 독서가 가능한 시간은 50시간이다. 그러면 나머지 30시간은 어디 간 거지?

    이게 내가 미치는 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2017년에 새롭게 결심했다. 평일에는 꼭 하루 한 권 읽기로. 조금 달라진 점은 독후감도 쓰기로 했다. <1일 1독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처참하다. 물론 독후감을 쓴 책이 내가 읽은 책의 전부는 아니다. 읽은 책 중에 독후감을 미루다 안 쓰고 넘어간 책이 더 많다. 그게 더 문제긴 하지만... 그리고 아직 2017년이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결국 일주일에 2권 수준이다. 작년하고 똑같다. 발전이 없다.

    올해 들어서 결심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주제를 잡고 직접 글을 써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마다 떠오르는 주제들과 의문들을 메모했다. 그 메모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일주일 동안 완성된 글을 쓰는 것이다. 메모는 쌓여갔다. 하지만 발행한 글은 0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심한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증도 겪는 게 정상 아닐까? 2년 동안 시간을 저렇게 쓰면서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게 긍정적이라는 좋은 신호인가? 세상적인 성공이나 명예 그리고 성취욕 같은 것이 전혀 없다면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욕심은 많다. 그러나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지 않는다고 별로 자책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심하게 자책하고 우울증도 한 번 크게 겪으면 그다음에는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2년 동안 허송세월 보내면서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미래가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말대로라면 나는 정신병 말기다. 2016년부터 똑같이 살았으니 지금은 정신병이 한참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현실 감각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 스스로 절실하게 느낀다. 매거진이 브런치 북으로 선정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지원요건을 달성하는 것이다. 브런치 북으로 선정되는 것은 이후에 일이다. 매번 계획을 세웠을 때 계획 달성, 그 이후의 좋은 결과까지 바라면서 계획을 해나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계획 자체를 완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 일까지 바라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11월 12일까지 15편의 글을 발행해서 지원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나에겐 이것이 중요하다. 2년 동안 미뤄오고 몰입하지 못한 습관을 이제는 버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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