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플레이어, 아이스크림폰, 컴퓨터
부엌에서 스멀스멀 풍겨 나오는 돼지고기 냄새에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뱃속에서 천둥을 치는 것처럼 꼬르륵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울렸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홀린 듯 냄새가 나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스레인지의 열기가 부엌 전체를 뜨겁게 에워싸고 있었고, 할머니는 그 틈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다진 돼지고기를 대야에 담고 있었다.
"이거 섞으래이."
할머니가 손짓하는 쪽으로 다가가보니, 잘게 썰린 김치, 돼지고기, 당면, 쫑쫑 썬 대파가 대야 속에 담겨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할머니. 간 좀 볼까?"
"너무 많이 먹지말래이. 또 배탈 난다."
나는 할머니 말을 흘려들으며 숟가락 한가득 퍼서 한 입에 먹었다. 만두 속은 정말 맛있었다. 만두 속으로만 쓰이는 게 아까워서 밥이라도 비벼먹고 싶었다. 앉은자리에서 다섯 숟가락째 퍼먹고 있을 때 할머니가 등짝을 때리러 오는 게 보였다. 황급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밀가루를 꺼내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만두 하는 날이 유난히 더 설렜던 건, 만두 하는 날은 엄마가 집에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작은 자동차가 마당에 들어서기만 기다리며 창밖을 자꾸만 힐끔 거렸다.
"진짜 맛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만둣국을 두 그릇이나 비워냈다. 당시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있던 엄마는 수금을 맞춰야 하는 매달 말일이 너무 곤욕스럽다며 만둣국을 먹는 내내 하소연을 쏟아냈다. 엄마가 오는 날마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만두를 빚고, 정성스레 끓였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만둣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만둣국은 그렇게라도 딸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었던 늙은 엄마의 마음이 담긴 한 끼였다.
마지막 만두 한알이 엄마 입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엄마와 할머니는 밥상을 치웠다. 할아버지가 타주는 믹스커피를 마시고 나자, 엄마가 시내로 나가자며 보챘다. 마당에 세워뒀던 엄마의 자동차에 나와 할머니가 몸을 구겨 넣었다. 세 모녀가 들어앉으니 작은 자동차가 더 작아 보였다.
"일단 mp3 하나 사고, 휴대폰도 약정 끝났을 테니까 바꾸자."
차에 타자 엄마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나는 휘둥그레하며 커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사실 휴대폰은 버튼 몇 개가 안 눌렸고, mp3는 일 년 전부터 갖고 싶었다. 휴대폰을 바꿔달라고, mp3를 사달라고 아마도 몇 달 내내 졸랐던 것 같다. 휴대폰 멀쩡하지 않냐, mp3가 학생이 왜 필요하냐... 전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길래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난 꿈인가 싶어서 싱글벙글 웃으며 "진짜?" "정말?" 엄마를 향해 계속 되물었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일단 가보자."
엄마의 자동차가 나의 부푼 기대를 싣고 논길을 따라 달렸다. 버스정류장을 쌩 하고 지나쳐 도로로 진입하자 해방감이 들었다. 논길을 따라 한참을 걷고, 버스를 또 이삼십 분 기다리고, 정류장마다 멈춰 섰던 지난날의 묵은 체증이 전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오는 날은 그런 날이었다. 모든 결핍이 해소되는 날.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인 소양강 처녀를 mp3에 다운로드하여주겠다며 으스대다 보니, 어느덧 속초시내에 도착했다. 우리는 시장 입구에 주차를 하고 제일 먼저 휴대폰 가게를 찾았다. 할머니가 사준 내 첫 휴대폰은 이미 군데군데 깨지고 벗겨졌다. 나는 엄마 마음이 바뀔까 봐 안 눌리는 버튼을 억지로 꾹꾹 누르며 "이것 봐." 하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엄마는 나를 슬쩍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휴대폰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제 딸 휴대폰 좀 바꿔주려고요."
엄마가 진열대 안의 휴대폰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휴대폰 기기종류가 엄청 많았지만, 난 단숨에 갖고 싶던 폰을 찾아냈다.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아이스크림폰은 내가 몇 번이나 눈여겨봤던 폰이었다.
"엄마. 난 이거."
손가락으로 아크릴 위를 툭툭 쳤다. 구석에 있는 보급형 휴대폰을 쳐다보던 엄마가 가운데에 있는 아이스크림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얼마예요?"
"아이스크림 폰이요? 요즘 여학생들 사이에 제일 인기 있는 폰인데..."
"그럼 비싸겠네요?"
"지금은 가격이 좀 내려가서 그렇게 안 비싸요."
안 비싸다고 말해준 직원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분은 아이스크림폰을 꺼내 진열대 위에 올려놨다. 나는 만져보라는 엄마의 말에 휴대폰을 열어 키패드를 눌렀다. 이미 몇 번이나 봐놨던 폰이라 당연히 마음에 쏙 들었다. 휴대폰을 닫자, LED 조명의 이모티콘이 휴대폰 위로 깜빡거렸다.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은 어서 사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이걸로 주세요."
"네. 어머님 신분증 가지고 잠시만 이쪽으로요."
첫 휴대폰은 내가 직접 고른 게 아닌 할머니가 사다 준 보급형 폰이었다. 그래서 내심 이번에도 엄마가 보급형 폰을 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내 친구들은 캔디폰, 고아라폰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내 휴대폰만 보면 "이 폰은 뭐야?"라고 했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또 그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바람은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공부 더 열심히 할 거지?"
결제를 마치고 온 엄마가 휴대폰이 담긴 종이가방을 건네주며 물었다. 건네받은 새 휴대폰 냄새는 이전폰보다 훨씬 강했다. 공부에 흥미는 없었지만 종이가방을 품에 안으며 "응." 하고 힘차게 답했다.
휴대폰 매장 안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 하이마트에 도착했다. 친구들과 속초 시내에 올 때마다 들러 컴퓨터, 노트북, mp3를 구경했기 때문에 가이드처럼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할머니가 자꾸 뒤쳐지는 바람에 평소보다 오래걸려 도착했다.
"요즘 아이리버 mp3가 인기가 많아요."
하이마트에 도착하자 우리 주위로 직원분이 따라붙었다. 냉장고, TV가 줄지어 늘어서있는 가전제품 사이를 걸으며 mp3는 어딨냐고 내가 물었다. 직원분은 mp3 코너로 우리를 안내하며 mp3를 두세 개 꺼냈다.
사실 제일 갖고 싶었던건 mp3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카세트로 노래 듣는 걸 좋아했던 나는, 투니버스를 봐야 하는 어린 시절에도 엠넷을 더 많이 봤었다. 그리고 슈퍼주니어의 팬인 엘프였기 때문에 오빠들 노래를 집중해서 들으려면 mp3는 필수였다. 그래서인지 하이마트 매장 안을 거닐 때 휴대폰 매장에 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심장이 요동쳤다.
"노래는 어떻게 들어요?"
"컴퓨터에 usb 꽂고 다운받아 저장하시면 돼요. 어렵지 않습니다. 어머님."
"너 이거 노래 다운받고 하는 거 할 수 있어?"
"당연하지. 학교에서 컴퓨터로 다운받으면 돼."
"학교에서 노래 다운 받는걸 할 수 있겠어?"
"응."
엄마가 고민에 빠진 것 같아서 초조해졌다. mp3를 안 사준다고 마음이 돌아설까 봐 불안했다. 컴퓨터로 mp3에 노래를 다운로드하고 충전하는걸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 mp3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물어보면 된다. 엄마한테 그거 별거 아니라고,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 알려줄 거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엄마의 옷깃을 잡았다. 그때였다.
"컴퓨터는 얼마나 하죠?"
엄마의 입에서 예상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믿을 수가 없어서 엄마를 쳐다봤다.
당시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고, 인터넷을 설치하려면 속초 시내에서부터 사람을 불러야 해서 출장비도 비쌌다고 아름이한테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비싼 컴퓨터 가격 때문에 말을 꺼낼 엄두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아무 기대도, 생각도 없었다. 놀라 벙찐 나를 뒤로한 채 엄마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컴퓨터 진열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사라졌다. 컴퓨터라니. 나한테 정말 컴퓨터가 생긴다고?
"엄마. 전기세가 좀 더 나오긴 할 거라, 내가 좀 더 보태서 부칠께."
설레는 마음으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엄마는 여러 종이를 손에 쥔 채 돌아왔다.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뒤에 따라붙은 직원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여기 명함이고요. as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네. 배달 잘 부탁드려요. 좀 멀어서..."
"걱정 마세요."
"재영이 너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엄마가 생긋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엄마는 인터넷 설치도 알아보고 진행하겠다며 할머니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는 언제 배송이 오는 거냐고 직원분께 슬쩍 물었다. 오늘 저녁쯤일 거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싸!" 하며 방방 뛰었다. 아이스크림폰에, mp3에, 컴퓨터까지. 절대 잊지 못할 하루였다.
엄마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가는 내내 컴퓨터 생각을 하면서도, 수금하느라 힘들다던 엄마의 하소연도 떠올랐다. 엄마는 낡은 작은 자동차를 타면서도 나를 위해선 최신형 컴퓨터를 사준 것이다. 비록 같이 살 순 없었지만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가 와서 좋기도 했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엄마의 마음이 좋기도 했다.
그날 저녁엔 하이마트에서 기사님이 왔다. 그리고 시골집에 어울리지 않는 최신형 컴퓨터를 세팅해 줬다. 그리고 엄마의 급한 성격 덕분에 다음날 인터넷까지 속전속결로 연결이 완료됐다. 고작 컴퓨터 한 대 들어섰을 뿐인데, 촌스럽게 보였던 우리 집에 생기가 돌았다. 그날은 네이트온으로 친구들과 몇 시간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나는 새로운 컴퓨터로 싸이월드를 개설하고, 미니홈피 꾸미는 재미에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오는 날은 그런 날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엄마와 함께하는 날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였겠지만, 나에게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 ‘특별한 하루’였다.
그날만큼은 부러운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가장 환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