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선 뭐 먹고살아요?

지금은 못 먹어요. (없어서)

by 달구비

나의 하루는 정확히 일곱 시에 시작됐다. 아니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가는 날이던, 가지 않는 날이던 할머니는 무조건 일곱 시가 되면 나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이다.


"나 배 하나도 안고파."


콤콤한 비린내와 진한 된장이 뒤엉킨 밥상 앞에 앉아서,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웅얼거렸다. 달콤한 잠을 한참 만끽하고 있던 터라 그 누구보다 이불속이 간절했다. 눈앞의 동태찌개와 청국장은 보기도 싫었다.


"네 할아버지 훌레 볶는다. 숟가락 어서 놔라잉."


할머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작 냄새를 풍기며 할아버지가 들어와 상 앞에 앉았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먼저 숟가락 들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국을 한술 뜨고 나서야,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몇 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든 끼니에 세 식구가 함께했다. 그게 우리 집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밥은 무조건 함께 먹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할머니의 반찬걱정은 여섯 시 내 고향이 덜어줬다. 저녁 여섯 시만 되면 우리 가족은 티브이 앞에 둘러앉았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이 가득 차도록 오징어를 잡아 올리는 장면이 나오면, 다음날 밥상 위로 오징어회가 올라왔다. 할머니들이 노인정에 모여 부침개를 부치는 장면이 나오면, 어김없이 부침개가 등장했다. 부침개를 변형해서 만든 장떡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반찬이었다. 여섯 시 내 고향은 할머니의 요리비책이었다.


우리 마을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지만 장을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간단한 조미료나 음료수, 과자만 팔고 있어서 장을 보려면 속초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그날은 여섯 시 내 고향에 나온 동태찌개가 먹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주문이 있었기에, 할머니와 나는 장바구니를 챙기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구루마와 똬리를 챙겨 좌우로 늘어선 논을 끼고 걸었다. 구루마는 장보고 집에 올 때 짐을 싣기 위한 용도였고, 똬리는 두 손이 모자라면 할머니 머리 위로 짐을 이어야 하기 위한 용도였다. 무거운 짐이 할머니 머리 위에 안정적으로 붙어있는 걸 보면 참 신기했다.


속초 중앙시장에 도착해서, 할머니와 함께 동태를 사러 갔다. 생선가게에는 오늘도 비릿한 생선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동태가 담긴 비닐을 건네받자 비닐 끝으로 뚝뚝 국물이 떨어졌다. 금세 손가락에 생선냄새가 뱄다. 할머니는 빠른 발걸음으로 과일가게로 걸었고, 배와 사과도 비닐에 담겼다. 정육점에 들러 산적용 돼지고기도 잊지 않았다. 사는 음식들을 보니, 곧 제사가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곧 제사음식을 하고 차릴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기 그릇 좀 가주와 보래야."


며칠이 지나고, 할머니가 목기그릇을 찾았다. 역시 제사였다. 이제는 창고처럼 쓰던 메주를 널던 방 서랍장에서 목기그릇을 꺼내, 행주로 깨끗하게 닦았다. 한 달에 한번 제사를 지내던 탓에, 나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배와 사과는 세 개씩 꺼내 윗부분을 동그랗게 잘랐다. 할머니는 고사리와 콩나물을 무치고 있었다. 돼지고기 산적은 언제 하는 건지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음식이 전부 끝나고 목기그릇 위로 음식을 올리고 있을 때 나타났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음식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끝났다. 제사는 힘들었지만, 제사가 끝나고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할머니가 평상시 하던 데로 똑같이 짓던 밥이었지만, 신기하게 제삿날에만 유난히 더 쫄깃하고 고소했다. 소고기 뭇국에 밥을 말아 산적을 올려 순식간에 두 공기를 비워냈다. 제사는 그런 날이었다.


제사 음식이 끝나면 이번엔 밭이었다. 경운기에 포대자루를 싣고 밭으로 나가는 날은 하루 종일 땀을 쏟아야 하는 날이었다. 호미를 들고 쭈그려 앉아 감자와 고구마를 캐고, 옥수수를 땄다. 포대자루 가득 구황작물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가 고구마와 감자를 삶았다. 삶은 감자는 설탕에 찍어먹고, 앞니로 열심히 옥수수알을 뜯었다. 고구마에 김치를 올려 베어 물면 열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이 막히면 입가심으로 동치미 국물을 마셨다. 그게 나에게는 과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건강한 간식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나무 끝에 매달린 뽕을 따먹다가 배탈이 난 날도 있었다. 보랏빛 작은 열매는 정말 달콤하고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다 보니 그 자리에서 백개는 먹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배가 아파서 할머니가 타준 매실을 먹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그날 이후로도 손가락 끝과 입술에 물든 보랏빛은 며칠 동안 빠지지 않았다.


자연이 주는 음식이 싫어서 밥맛도, 입맛도 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밥상 위로 수북이 쌓인 고사리는 쳐다도 보기 싫었고, 고추부각은 맵기만 할 뿐 영 손이 가질 않았다. 하도 먹다 보니 옥수수는 밍밍해졌고, 감자와 고구마도 흥미를 잃었다.


그땐 쳐다도 보기 싫던 시골 음식이었는데, 요즘따라 그 맛이 가장 그립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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