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아저씨

그 남자가 굴다리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

by 달구비

"여학생만 노린대."

"눈이 파여있다던데?"


3학년이 되어 마지막 중학교 생활을 지내던 해였다. 귓가를 때리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들 무렵, 차가워진 바람에 춘추복을 꺼내 입었다. 교복이 두꺼워진 첫날, 우리는 빈 과학실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퍼트리기 바빴다.


"일단 마주치면 무조건 납치한대."

"나 어제 봤는데 보자마자 도망갔어."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친구들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은 이름도 없이 '부엉이 아저씨'로 불리는 어떤 중년 남성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를 가운데 두고, 초ㆍ중ㆍ고등학교가 일렬로 모여있었다. 그리고 세 학교 앞엔 명승마트라는 작은 문방구가 있었는데, 그 옆으로 아주 좁고 긴 굴다리가 있었다. 그 굴다리는 학교도, 집도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적어도 이십 분은 단축됐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낮에도 깜깜하고, 여름에도 추웠지만 그렇다고 안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 엄청난 이유 때문에, 나는 늘 친구들과 함께 무리 지어 다니곤 했다.


어느 날부터 굴다리 안에서 지팡이 끝으로 땅을 긁는,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다. 친구들 말에 따르면 종종 굴다리 앞에서 마주치는 그 사람이 부엉이 아저씨 라고 했다. 상상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내 친구도 잡혀갈 뻔했대."

"진짜 무서워..."


상상 속 부엉이 아저씨의 존재가 점점 무시무시한 존재로 커져 갔다. 친구들과 속삭이다 보니 컴컴한 과학실 안 널브러져 있는 실험 모형들이 갑자기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그날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부엉이 아저씨가 둥둥 떠다녔다.


"할머니 부엉이 아저씨 알아?"

"그게 뭐이여?"

"여학생들 납치하는 사람이라는데, 교암 쪽에 돌아다닌대."

"그런 게 어딨어."


집에 오자마자 할머니 옆에 비집고 앉아 부엉이아저씨 이야기를 쏟아냈다. 할머니는 콩을 털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라고 했지만, 다음날 아침 사륜 오토바이 앞으로 할아버지 등을 떠밀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덜덜거리는 오토바이 소리는 부엉이아저씨를 쫓아내는 북소리 같았고, 할아버지는 나를 경호하는 호위무사 같았다. 적어도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재영아. 빨리 나가자."

"오키."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부엉이 아저씨는 슬며시 잊혔다. 그리고 그날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의 책받침이 명승마트에 대량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내 발걸음은 집이 아닌 오빠들을 향했다.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스티커, 손수건까지 다양하다 보니 마트 앞으로 여자 친구들 거의 대부분이 모여들었다. 슈퍼주니어의 팬이었던 나는 동해와 희철의 책받침 3개를, 펄럭이는 교복치마 틈 속에서 겨우 손에 넣었다.


"나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데, 오늘 너 집에 혼자 가야겠다."

"알았어. 내일 봐."


눈에 보이는 하늘은 점점 빨간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매대에 한가득 쌓여있던 연예인들의 얼굴이 듬성듬성 남게 되었을 때 마트 안에 학생은 나뿐이었다.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열기로 뜨거웠던 마트를 나와,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속셈학원과 피아노 학원도 슬슬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에 내 그림자도 키가 커졌다. 거리에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대신 스산한 바람소리만 웅웅 거려, 괜스레 추운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몸을 웅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땅만 노려보고 한참을 걷다가, 어딘지 모르게 싸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굴다리 앞이었다. 그런데 컴컴한 굴다리 초입에 선글라스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우뚝 서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부엉이 아저씨였다.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부엉이 아저씨는 행복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까만 편도 아니였는데 표정이 날씨처럼 어두웠다. ‘뒤돌아서 빠르게 도망칠까. 달리기도 빠르지 않은데, 붙잡히면 어떡하지.’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발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너도 내가 무섭구나."


그 순간 웅얼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무심하게 귓가에 울렸다. 아마 굴다리 앞이 조용하지 않았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글라스 너머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진짜 납치범이에요?"

"내가?"

"네."


부엉이 아저씨가 등을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괜히 심기를 건드린 건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나의 발소리에 아저씨가 웃음을 멈추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랬으면 난 감옥에 있었겠지. 나는 앞이 안 보여."


아저씨가 선글라스를 매만지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고백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팡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낮에도 밤에도 선글라스를 쓴 거였구나. 시골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라, 괴소문이 만들어진 게 이해가 갔다.


"학생이니?"

"네."

"몇 학년?"

"중학교 3학년이요."

"나도 너만한 딸이 있었어. 지금은 저기로 갔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게 오랜만인 건지,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소문의 오해를 벗고 싶은 건지 아저씨는 빠르게 말을 이어가며 하늘을 쿡쿡 찔렀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저씨의 마지막 말 때문에 그 생각이 사라졌다.


아저씨는 일찍 결혼을 해 나만한 딸 하나를 뒀다고 했다.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단란한 세 식구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나 셋이 탄 차를 덮친 음주운전자로 인하여 아내와 딸을 잃었고, 그때 시각장애인이 됐다고 했다. 모든 의욕을 잃고 시골로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접했지만, 해명할 기운도 없었다고 했다. 그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지면 잠이 드는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 수밖에 없는 나날이라고 했다.


"날 너무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해도 어쩔 수 없지만."


바닥으로 어둠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아저씨는 지팡이를 질질 끌며 굴다리 바깥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본 적도 없는 세 식구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아저씨와, 부모님이 없는 내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관심은 늘 다른 데로 흘렀다. 다음날부터 고등학교 담장너머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빠르게 정신을 뺏겼다. 친구들말에 의하면 고등학교에서 축제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춤연습을 하는 오빠들을 구경하느라 매일 고등학교 근처를 기웃거렸다. 잘생긴 오빠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입을 틀어막고 꺅꺅거렸다.


"아 배고파. 재영아 배 안 고파?"


그날은 점심도 거른 채 점심시간 내내 담장 앞에 매달려 있었다. 오빠들의 춤이 날로 늘어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구경할 때는 배가 고픈지도 몰랐는데, 집에 갈 때가 되니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경은이와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배를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오빠들 이야기는 빼놓지 않았다. 동해와 희철의 책받침은 어디다 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열라 배고파."

"우리 이거라도 먹을까?"


경은이가 가리킨 건 양 옆으로 널려있던 반건조 오징어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셀 수 없이 널려있는 오징어 중에서 한 두 개 먹는다 해도 티도 안 날 것 같았다. 우리는 못 참고 널려있던 오징어를 손에 쥐고 뜯어먹었다. 오징어가 입에 닿자 배고픔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희 지금 여기서 뭐 하냐!"


기와집 안쪽에서 주인아줌마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고함을 질렀다. 나는 볼 안 가득 찬 오징어를 숨겨 보려 했지만, 질겅거리며 오물거리던 경은이의 입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주인아줌마는 오징어값을 물어내라며 다그쳤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부모님 이름을 대라고 했다. 궁지에 몰린 나는 교복 치마 자락을 움켜쥐고 식은땀만 흘렸다. 그 순간 뒤에서 낯익은 지팡이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애들 일입니다. 내가 대신 내드릴게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부엉이 아저씨였다. 경은이는 오징어를 먹다 걸렸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더니 그대로 뛰어 도망쳤다. 혼자 남겨진 나는 발끝으로 땅만 쓸다가 부엉이 아저씨와 주인아줌마 이야기가 길어지는 틈을 타, 그대로 집을 향해 뛰었다.


그 이후로 나는 굴다리 쪽으로 지나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부엉이 아저씨에 대한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성인이 되고 나서 경은이한테 슬쩍 물었지만, 경은이는 부엉이 아저씨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의 기억 속에도 부엉이 아저씨는 없었다.


비록 지금은 내 기억 속에만 살고 있는 부엉이 아저씨지만, 살다가 가끔 굴다리를 마주치면 그 아저씨를 떠올린다.


세상은 그를 ‘부엉이 아저씨’라 불렀지만 나에게 그는, 누군가의 아빠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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