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내 친구 바둑이와 누렁이
군데군데 녹이 슬어 철이 벗겨진 솥단지가 가스레인지 한가운데를 점령하고 들어섰다. 그 주변으로 음식 냄새가 슬슬 나기 시작하더니, 집안 가득 된장과 생선이 뒤섞인 구수한 냄새로 채워졌다.
"바둑아, 밥 먹자."
할아버지가 쫄쫄쫄쫄 소리를 내자, 나무판자 안쪽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걸어 걸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쳐다보며 강아지는 혀를 날름거렸다. 곧 목줄이 그릇에 부딪혀 챙챙 소리가 났고, 바닥은 금세 음식물이 튀어 엉망이 됐다.
우리 집은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 온 강아지들은 주먹보다 작았다. 바둑이와 누렁이는, 마당과 내 방 앞을 지키며 용맹하게 자라났다. 짧은 줄 하나에 의존한 눈빛이 서글퍼 보여서, 가끔은 무거운 목줄을 풀어주고 함께 뒷산으로 향했다.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는 탓에 통제가 안되다 보니, 산책이라기보단 내가 끌려다니는 모양새였다.
할머니는 늘 아침식사를 마치면 강아지에게 줄 밥을 끓였다. 시골 개라고 아무거나 주는 건 아니었다. 영양가 있는 생선과, 고기가 듬뿍 들어간 특식이었다. 비록 똥개였지만 먹는 것만큼은 럭셔리한 도시강아지 못지않았다.
"바둑아, 누렁아. 언니 갔다 올게."
바둑이와 누렁이 등을 한참을 쓰다듬고, 교복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요리조리 내 모습을 살폈다. 부쩍 거울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치마단이 좀 더 짧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오늘은 친구들과 시내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라, 할머니에게 받은 용돈을 치마 주머니에 고이 집어넣고, 들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일단 에뛰드는 무조건 가야 돼."
"나는 오늘 진주알 비비 사야지."
"나는 틴트."
경은이, 현빈이와 학교가 끝나자마자 속초 시내로 향했다. 당시 에뛰드하우스, 토니모리, 스킨푸드 등 로드샵 화장품가게들은 한 군데에 모여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팔짱을 끼고 깔깔거리며 화장품 투어를 시작했다. 한참이나 들었다 놨다 할 뿐, 막상 계산대에 올라오는 건 두어 개뿐이라 점원의 따가운 시선도 등 뒤로 따라붙었다.
"몇 호로 드릴까요?"
"네?"
"파우더 색상 몇 호로 드려요?"
"아... 제일 밝은 걸로 주세요."
유난히 얼굴이 까맸던 나는, 맨 먼저 파우더를 골랐다. 매장 안에 붙어있는 고아라의 얼굴이 내 얼굴로 바뀌는 걸 상상하자 흐뭇해졌다. 그리고 칙칙한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틴트도, 핑크빛이 도는 진한 색으로 골랐다. 종이가방에 차곡차곡 들어가는 화장품들을 보자 마음속이 든든해졌다. 경은이와 현빈이도 종이가방이 터지도록 화장품을 쓸어 담았다. 그제야 점원의 표정도 밝아졌다. 우리는 매대에 고개를 처박고 테스터 화장품을 덕지덕지 찍어 발랐다. 손에 짚이는 화장품은 전부 얼굴 위로 올라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고 막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상기된 표정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로의 종이가방을 들여다보며 구경을 하다 보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품 안에 종이가방을 끌어안고 후다닥 내 방으로 향했다. 침대 밑에 종이가방을 밀어 넣고는 예뻐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짙게 어둠이 깔린 고요한 집 안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눈을 뜬 건 나였다. 나는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 뒤 재빠르게 세수를 했다. 총총거리며 내 방으로 돌아온 뒤, 침대 밑에 넣어둔 종이가방을 주섬주섬 꺼냈다. 반짝거리는 파우더를 보자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팩트를 열고 얼굴에 두드렸다. 팡팡 소리가 삼십 번도 넘게 이어졌다. 틴트도 꺼내 칙칙한 내 입술 위에 몇 번이고 덧칠을 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깨기 전에 책가방을 둘러메고, 도망치듯 학교로 뛰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책 밑에 파우더를 숨겼다. 종이 울리고 1교시 수업이 시작됐지만, 칠판 위에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둔 탓에 교실 안으로 바람이 불어왔고, 얼굴에 올려둔 파우더가루가 날릴까 봐 불안했다. 다시 새까만 얼굴로 돌아간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시선은 자꾸 시계로 향했다.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라다가, 종이 울리자마자 책밑에 숨겨둔 파우더를 얼굴이 아플 정도로 두드렸다.
"나 됐어?"
"응 아주 하얗다. 화장 잘됐어."
옆자리에 앉은 경은이에게 오분에 한 번씩 물어보며 얼굴상태를 체크했다. 파우더를 두들기고, 또 두들기고, 두들길수록 예뻐진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점점 달걀귀신처럼 변해가는지도 모르는 체 열심히 두드렸다.
'드르륵'
2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앞 문이 열렸다. 만족감에 웃으며 문을 쳐다보던 내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뭐야? 왜 수학이 들어와?"
"몰라."
선생님들 중 가장 무서운 호랑이 수학선생님이 들어왔다. 커다란 몽둥이를 쥔 모습을 보니, 오늘 누구 하나 손바닥이 작살날게 분명했다. 천사 같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과학 수업이었는데, 왜 수학선생님이 들어온 건지 알 수 없었다.
"과학선생님이 아파서 수학 수업으로 대체한다. 오늘 며칠이지?"
교실 한복판으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오늘은 18일이다. 그럼 곧 8번을 부를 것이다. 그리고 수학문제를 내겠지. 못 맞추게 된다면... 벌써부터 손바닥이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오늘 18일이지. 그럼 9번 나와."
선생님입에서 예상과 다른 번호가 불리자 나는 깜짝 놀랐다. 내 번호가 9번이었기 때문이다. 오금이 저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아, 땅만 바라보며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칠판 위에 숫자가 뒤엉켜 써져 있었다. 한참을 째려봐도, 도무지 답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수학에 흥미가 없어서 수학시간마다 딴짓을 한지 오래다. 이런 문제를 배운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났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노려보는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져 손바닥에 땀이 났다.
"모르겠습니다..."
"손 내."
올게 왔다는 생각으로 칠판에서 몸을 돌려 선생님을 바라보고 섰다. 손바닥을 맞을 때, 뼈를 잘못 맞아 울먹거리는 친구들의 얼굴이 스쳤다. 나는 이미 땀에 젖어 축축한 손바닥을 교복에 슥슥 닦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이 자식 화장했어? 얼굴이 왜 이래?"
예상치 못한 지적에 나는 깜짝 놀랐다. 교실이 들썩일 정도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반 친구들 전부가 딴 짓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부끄러워 얼굴이 뜨끈거렸다. 까불거려서 꼴 보기 싫은 남자 친구들 몇 명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학생이 화장을 해? 자리로 가서 가방 가지고 와."
선생님이 몽둥이로 교탁을 탁탁 쳤다. 경은이와 현빈이는 움찔거리며 일부러 딴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화장품이 떠올라 눈앞이 캄캄했다.
"빨리!"
선생님의 불호령에 황급히 내 자리로 뛰어갔다. 걸어둔 가방을 집어 들고 선생님께 내밀었다. 선생님 마음이 바뀌길 간절히 바랐지만, 선생님은 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화장품가게에서 샀던 수많은 화장품들이 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몽둥이로 화장품 개수만큼 손바닥을 맞았다. 족히 열대는 넘게 맞은 듯했다.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수학선생님이, 왜 하필 내가 지목 됐을까. 벌게진 손바닥을 문지르며 눈물을 꾹 참았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도 손바닥이 후끈거려, 선생님 몰래 책상 쇠 부분에 갖다 대고 열을 식혔다.
"괜찮아?"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현빈이와 경은이가 달려왔다. 얘들은 나보다 훨씬 더 진하게 화장을 했는데 왜 하필 나일까. 괜스레 친구들도 꼴 보기 싫어져서 대답 없이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면서도 화장품을 뺏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아,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놀자고 다가오는 경은이와 현빈이를 뒤로한 채 가방을 품에 안고 집으로 뛰어갔다. 오늘은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둑이와 누렁이가 목줄을 덜컹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내쪽으로 오고 싶어서 낑낑대는 소리에, 나는 강아지들에게 달려가 따뜻한 털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화장품으로 겹겹이 쌓인 내 얼굴 위로 혓바닥이 날름거려 간지러웠다. 이 화장이 잘못됐다고 화를 내며 혼내는 어른도, 비웃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런 모습도 괜찮다며 정성스럽게 핥아주며 꼬리를 흔드는 건 저 둘 뿐이었다.
"으이구, 귀여워..."
한참이나 지푸라기가 가득한 강아지 집에 들어가 앉아있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경은이와 현빈이보다 이 털뭉치들이 주는 온기가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그 작은 숨결이 크게 위안이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학생이 화장을 하면 안 되는 건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얼굴 조금 하얘진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