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강원도 고성군

메주냄새가 밴 새 교복

by 달구비

“뭐 이래 비싸요?”


날카로운 함경도 사투리가 작은 매장 안 공기를 베듯 울려 퍼졌다. 힐끔거리는 시선들 사이로, 결국 얼굴만 알던 친구 경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꽃무늬 몸빼바지를 잡아당겼다.


“난 속초 여중으로 갈 거야.”

“속초까지 뭐 타고 다니게?”

“아빠 트럭.”


6학년 봄방학이 시작되자 학교에서 희망하는 중학교를 적어냈다. 사실 나도 아름이와 함께 속초 시내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사방은 논과 밭이고 마주치는 건 뱀과 사마귀뿐인 거 말고, 가끔은 햄버거도 먹을 수 있고 학원도 있는 속초 시내 말이다.


하지만 속초로 학교를 다니려면 버스나 차를 꼭 타야 했는데, 하루 8대 다니는 버스 첫차는 8시 반, 막차는 7시 반이었다. 애매한 시간도 시간이지만, 굳이 걸어서도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두고 버스를 타겠다는 나를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층짜리 작은 학교 건물을 등지고 졸업사진을 찍던 날. 여섯 명뿐인 같은 반 친구들과 조촐하게 작별을 했다. 학교 끝나면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고, 반건조 오징어를 훔쳐먹던 6년의 추억이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와 함께 바로 옆 건물의 중학교로 가는 친구는 딱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이별이었다. 그러면서도 속초로 중학교를 다닐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한참을 쳐다봤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살게 많다”며 내 손을 이끌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올랐다. 버스 노선 같은 건 없었다. 그곳에 오는 버스는 ‘아침해 뜨는 동해, 1번’ 딱 하나였기 때문이다. 할머니 옆에는 큰 수레도 세워져 있었다. 장을 볼 수 있는 곳은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만물트럭과, 마을 내 작은 구멍가게뿐이다 보니 한번 시내로 나오면 한 달 치 장을 봐야 해서 챙길 게 많았다.


이십 분쯤 지나, 시장 입구 앞에서 내렸다. 할머니는 늘 들리던 종묘사에 들러 밭에 심을 품종의 씨앗을 골랐다. 따분해진 나는 할머니를 졸라 모닝글로리로 향했다. 그새 새로 들어온 학용품이 많아 눈동자와 손은 이리저리 바빴다.


조립해서 쓰는 필통이 신기해서 만지작거리다 보니, 할머니가 나를 찾아와 보챘다. 어쩔 수 없이 필통을 내려놓고 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줄지어 늘어선 대야에 발이 계속 걸려 한 발짝 디디기도 버거웠다. 비릿한 생선 냄새를 한참이나 맡고 나서야, 할머니가 교복을 사자며 시장 안 기성복 가게를 찾았다. 나는 기겁을 하면서 몇 번이나 눈여겨봤던 아이비클럽 매장으로 할머니를 끌고 온 것이다.


"그래도 지금 세일기간이라 좀 저렴해요."


매장 직원이 생선이 담긴 비닐봉지를 힐끔거리며 난처한 듯 말했다. 억지로 붙든 할머니 발걸음이 다시 기성복 가게로 향할까 봐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경은이와 계속 눈이 마주쳤다. 나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할머니..."


아까보다 더 세게 할머니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 틈에 할머니가 바지춤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드디어 교복이 생겼다는 기쁨보다, 비린 냄새를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이 먼저 밀려왔다.


나는 튕기듯 매장을 빠져나와 정류장만 보며 달렸다. 마침 1번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버스 계단을 오르자, 내 뒤로 할머니도 생선냄새를 풍기며 버스에 올라탔다.


"얘 중학생 아니에요?"

"뭐 이래요? 야 아직 초등학생이요."


할머니가 바짓춤에서 동전을 꺼내 돈통에 요란스럽게 집어넣자, 버스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버스 안 승객들은 웅성거렸고,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또다시 내 고개는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할머니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뒷자리에 몸을 구겨 넣었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할머니 반대 방향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가 출발하자 창 밖으로 햄버거가게와 피자가게, 문방구가 나를 약 올리듯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가게 앞에서 무언가를 먹으며 깔깔거리는 내 또래 친구들은 책 속의 그림 같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풍경들이 한참이나 이어지다가, 곧 간판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실루엣도 없어졌다. 창밖엔 어느새 초록빛 논과 밭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끔은 햄버거도 먹을 수 있고, 문방구 구경도 실컷 할 수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폐에 묻은 비릿한 생선냄새도 코끝에 스몄다. 왼손에 들린 촌스러운 문양의 교복이 바윗장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려도 할머니와 거리를 두고 씩씩대며 걸었다. 할머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억울함은 엉뚱한 곳으로 꽂혔다. 발목 끝에 돌이 달린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생선 비닐봉지를 부엌에 던졌다. 할머니가 안 보이는 곳에서 와와일공구를 읽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방문을 열자마자 콤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을 둘러보니, 바닥에 메주덩어리가 빼곡했다. 거기에 후끈거리는 열기까지 더해져 숨이 턱 막혔다.


"아 할머니! 왜 또 내 방에 메주 쑤는 거야."

“니 뽁작장 좋아하면서 메주 안 쑤믄, 유에 먹을겨?“


교복이 들어있는 종이가방을 거칠게 내팽개치고, 마룻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내 방에서 쑤기 시작한 메주 때문에, 남자애들은 나는 메주라고 불렀다. 이 콤콤한 냄새를 달고 학교에 가면, 입학식날부터 내 별명은 메주로 확정일 것이다. 그리고 지독한 냄새 때문에 아무도 내 옆에 오지 않을 것이다.


미닫이 문을 다시 열었다.

바닥에 쌓인 메주덩어리들 중, 제일 못생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혼자 학교에 다니게 될 내 모습 같았다.


나도 향기 나는 원피스를 입고, 가끔은 통닭도 먹을 수 있다면. 친구들과 들판을 서성이며 식혜를 마시는 게 아니라, 햄버거가게에서 콜라나 주스를 마실 수 있다면.


딱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그런 일들은 나에게만 어려웠다. 뜨거운 눈물이 메주 위로 떨어졌다. 이제는 내 눈물에서도 메주냄새가 날 것이다.


그날 저녁은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 온 도치로 끓인 알탕이었다.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억지로 밥상 앞에 앉았다. 보리밥 위로는 감자와 콩이 수북했고, TV에서는 6시 내 고향이 나오고 있었다. 젓가락은 허공에서 자꾸만 멈췄다. 깨작거리며 밥알을 세고 있던 그때 전화기에서 반가운 전화벨이 울렸다.


"재영아. 밥 다 먹고 우리 집으로와. 옥상에서 별자리 구경하자."

"옥상?"

"응. 매트리스 버릴 거 옥상에 올려놨는데 여기 누워있으니 별이 잘 보여. 이따 봐."


벗어나고 싶은 저녁 시간에 잘됐다 싶어, 그대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름이네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름이네 마당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동네 친구 선화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아름이네 엄마가 내어준 빵과 우유는 먹음직스러웠다. 우리는 빵을 입에 문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낡은 매트리스가 놓인 옥상 위에 줄지어 누웠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듯 밤하늘에 콕콕 박혀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별자리를 찾느라 옥상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나 오늘 교복사고 엄마랑 햄버거 먹었어."

"어디서 샀어?"

"스마트. 그리고 영어학원도 등록했어."


아름이 입에서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졌다. 아름이가 우쭐대며 벌떡 일어나 새 교복을 꺼내 보여줬다. 남색 상하의에 단정한 교복이었는데, 촌스러운 쨍한 자줏빛보다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내 교복보다 촉감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이상하게 아름이와 나 사이로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듯 낯설게 느껴졌다. 아름이가 괜히 미워 보여서 말없이 일어나 계단 쪽으로 걸었다. 아름이와 선화는 교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힘없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쳐다도 보지 않고 곧장 내 방문을 열었다. 아까보다 냄새가 더 짙어진 것 같았다. 발로 메주를 대충 밀어 넣고, 빈 틈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머릿속에 아름이의 반짝이는 남색 교복이 둥둥 떠다녔다. 나도 잊고 있던 내 교복이 생각났다.

‘그래, 색은 좀 촌스러워도 나도 이제 교복 입는 중학생이야.’ 은근히 좋아지는 기분에 아이비클럽 종이가방을 찾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루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방 옷장문을 열었다.


그 안에 있었다. 그것도 메주와 함께.

그 순간, 걸려있는 게 교복이 아니라 시골 된장통 뚜껑처럼 보였다.


교복을 움켜쥐고 덜덜 떨며 코를 갖다 댔다. 코가 교복에 닿기도 전에 콤콤한 냄새가 코 끝을 파고들었다. 교복은 이미 발효가 된 것처럼 축축했다. 나는 티비앞에서 옥수수를 먹는 할머니 등 뒤로 거칠게 소리쳤다.


"할머니. 교복을 왜 여기다 걸어놨어?"

“빨고 다려놨지. 니 입을 거 아녀.”

"메주 위에 걸어 놓으면 어떡해. 냄새가 배잖아."

“에구, 그랬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할머니는 내 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메주냄새가 밴 교복을 입고 입학식에 간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다시 빨면 되제. 세탁개 집어여놔.“


손으로는 옥수수를 쥐고, 눈으로는 연속극을 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TV 속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몸에 닿기도 전에 축축해져 버린 교복을 바라봤다. 세탁기를 아무리 돌린다 해도 깊게 밴 메주냄새가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 같았다. 이미 깊숙이 스며들어, 빠져나올 수 없는 나 자신말이다.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 이 시골도, 촌스러운 교복도, 메주도, 할머니도 모두. 나는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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