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과 존재 사이
수증기가 되고 싶었다.
공기라기엔 너무 축축하니까.
수증기처럼 아무도 모르게 끓어오르다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루는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었다.
하루는 그냥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대로만 가도 좋지 않을까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지겹게도 또.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어떠한 상황으로.
미세하게 신경을 건드리면
아슬아슬하게 견디던 임계점을
넘어서고 만다. 툭.
무너진 마음이 끝내 육체를 무너뜨렸는지,
육체가 무너져 마음도 이리 쉽게 무너져 내렸는지.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이 비명을 지른다.
내 머릿속은 간절한 외침을 내지르고 있다.
난 불안의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
나 때문에 울지 마.
그럴 거라면 나를 기억하지 마.
그냥, 처음부터 없던 거야 난.
그냥, 몰랐던 거야 날.
미안해, 나여서.
미안해, 나라서.
내가 상처가 될까 두려워.
내가 상실이 될까 두려워.
내가 미움이 될까 두려워.
사랑하면서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나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날 싫어하지 않고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매일을 긴장과 불안으로 살기 싫었는데
매일을 거짓과 가면으로 살기 싫었는데
쓰러졌다 눈을 뜨면 걱정으로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웃어 보였다.
미처 돌아오지 않는 멍한 정신으로도
‘나, 괜찮아.’ 장난스레 말을 전한다.
행동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이기적 이게도 상실로 인한
슬픔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 존재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픈 얼룩으로 남는 것이 두려웠다.
통증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병명과 약이 늘어갈수록 내 삶의 목록에는
'금지'와 '주의'만이 가득 찼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숨길 수 없는 '한숨'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미안한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게는 육체의 고통보다
더 날카로운 통증으로 다가왔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죄책감까지 내 몫이라니.
그 사실이 감당하기 버거워질 때면 조용히,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참함.
그 무력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나로 인해 그들이 불안해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참담함.
그들의 눈동자에 맺힌 걱정이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때,
나는 그 모든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 시기, 나는 나를 마주했다.
각종 검사와 입원,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날을 보내면서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나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하기에 고민이 앞서
움츠러들던 내게는 전환점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고민하는 시간에 행동하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던 마음에 괜찮다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나는 꺼지지 않으려 움직였다.
마치 멈추면 그대로 꺼져버릴
촛불처럼 필사적이었다.
물론, 그 끝은 늘 예고된 과부하로 이어졌지만.
움직이면 무채색이던 나의 하루에
색이 칠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금방 지워질 색일지라도,
그 모습조차 내가 아닌 줄도 모른 채 나는 달렸다.
그렇게라도, 나는 존재하고 싶었다.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삶에서
나만 혼자 도태되어 간다는 절박함.
타인 앞에서는 당당한 척 미소 지었지만,
사실은 대열의 가장 뒤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던 모습.
그 시절의 나는 나의 영혼을 가장 돌보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삶을 갈구하며 활발히 움직였다.
그렇게 지켜낸 하루가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이겨낸 하루가 허무하다 싶다.
누구에게는 별거 없이 지났을 하루가
내게는 참 화려하다. 참 버겁다.
여전히, 나는 가끔 수증기를 꿈꾼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땅에 발을 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