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로 8 [인사]

나에게 안부를 묻다.

by 달결

회색 도시에 서글픈

푸른 새벽이 내려앉는다.


누군가는 깊은 잠에 빠져 있고

누군가는 이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고

누군가는 늦은 일상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고통의 새벽을

온몸으로 마중하고 있다.

온통 어둠뿐인 벽들 사이에서

푸른 새벽이 가져오는 찬 공기와 희미한 빛.


차라리 몰랐으면 어둠에

갇혀 있는 줄도 몰랐을 텐데.

비쩍 메마른 꽃을 비추는 저 빛이 없었다면

저 꽃이 나와 같다 한탄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둠의 끝에 붙어 어둠을 내치지도 못하면서

빛이라면서 어둠과 더 닮은 색을 띠고

어설프게 숨지도 못하게,

어설프게 외면하지도 못하게

틈새로 숨어든다. 틈새로 스며든다.


새벽은 짧으니 괜찮아.

곧 완연한 빛이 어둠을 삼켜 줄 거야.

곧 완전한 어둠이 모든 것을 덮어 줄 거야.

푸른 새벽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조용히 숨죽이며 아침을 기다린다.








회색 가득했던 새벽이 어느새 사라지고

하늘이 참 맑다. 참, 눈부시다.

하지만 그 눈부심 속에서 나는

혼자 이방인이 된 듯 낯설어진다.


커피숍 창가에 앉아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본다.


빛이 쏟아지는 거리,

저마다의 속도로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들.

서로 웃고 떠들며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뭐가 저리들 살아 숨 쉬는 걸까.

저 생생한 활기가 나에게만 닿지 않아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생경하다.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세상은 분명 살아있는 느낌인데,

내 손끝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그 차가움이 낯설어 잠시 멈춰 서 본다.


문을 열고 나가 저 환한 공기 속에

완전히 섞이면 이 낯섦이 사라질까.


심호흡과 함께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딘다.


햇살이 스치고, 바람이 감싼다.

그 다정함에 낯섦은 조금씩 묽어지고,

나에 대한 애틋함은 진해진다.


오늘의 내게, 오늘의 세상에게,

오늘의 오늘에게 말을 건넨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에 집중하고,

누군가의 하루가 아닌

나의 하루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익숙해서 낯선 나를, 익숙해서 소홀했던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듣는다.


나에게 가장 인색했던 나를 용서하고,

나에게 가장 냉정했던 나를 안아준다.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이방인이길 택했던

나에게 세상과의 인사를 건넨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기어이

따스한 숨을 쉬며 그 온도에 녹아들어 간다.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오고

그 아침을 지나 또 다른 새벽이 온다고 해도.


머뭇거리던 발걸음은 계속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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