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로 10 [통증]

나를 잃지 않기 위해

by 달결

이른 아침을 깨우는

비는 속삭임 같아서

때로는 내게 괜찮다고 말하고

때로는 나를 묻기도 한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아직은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


그 시간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곧 있으면 살아날 그 생생함을 맞이하기 전.

심호흡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래 오늘도.





글에

나를 담는 것이

유독 더 힘든 날이 있다.


몸이 아픈 날의 내가

나를 삼키려 하는 날이면

나는 진흙에 발이 빠진 것만 같다.


통증은 나의 몸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무기력함은 나의 뇌를 마비시킨다.


어쩔 수 없는 거야.

다 지나가.

나에게 말해봐도.

매번 찾아오는 패배감은

나를 진창으로 끌고 간다.

생각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기에

‘충분’을 넘어선다.



몇 번의 응급실, 몇 번의 입원

그리고 수술, 약들과 검사들

매달 찾아오는 진료일 같은 것들.


심장이 내려앉는다.

육체 안에 갇혀 있는 이상

난 쉽게 지치고 통증에 아파할 테지.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해야만 하는 것도 많은데.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내가 원하지 않은 통증 속에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무력하게 기다리며.

기껏 한다는 것이 듣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약을 삼키는 것뿐이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느냐 묻는다.

의미가 떠오르지 않느냐 묻는다.


“아니요.”


대답한다.

아닌 게 아니어도 아니라 대답한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글을 써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사람이에요.

무언가를 어떻게 느꼈는지

글을 써야만 깨닫는 사람이에요.


참 잔인하지요.

아프지 않으려면 약을 먹어야 하고

약을 먹으면 글을 쓰기 어려워지고

글을 못 쓰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누군가는 말할 테지요.

그 하나쯤은 포기하라고.

그 하나가 전부라면요.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라면요.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의미를 잃을 때는

내가 글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먼저 잃었으면 좋겠어요.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만 있게.

존재 이유 따위에 고통받지 않게.




병원을 나서며 한껏 눈물이 차오를 때.

내가 좋아하는 공연 표를 준비한 너는.

나보다 먼저 나를 아는 너는.


괜찮은 거야?


아니면 어쩌지.


무서워서 묻지도 못한다.

괜찮지 못한 나를 보며

괜찮을 수 없는 네가 가여워서.


겁이 난다.




처음 너의 눈물을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기억력도 없는 내가 하필

그건 왜 지워지지 않는지.


너에게 내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상처투성이인 나를 만나

나 때문에 너도.라는 생각이 들면

못난 나는 사라지고 싶어진다.

너에게 부재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사라지고 싶다.


내가 곁에 있어야 행복하다던

너는 여전히 내가 있어야 행복할까?

아프기만 한 내가 어느 순간

무거워지진 않았을까?

물에 흠뻑 젖은 솜처럼

나는 이미 널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외면하고 모르는 척할 뿐.


그런데 점점 힘들 때가 있다.

내 어둠이 너도 물들이는 것 같아서.

하필 상처투성이 둘이 만나

서로 안아주는 모습이

더 아파서.







비가 소나기가 되어

다 씻어 내리면 좋겠다.

슬퍼서 울다가 일어났는데

꿈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것처럼.

그렇게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꿈이었습니다.”


자, 우리에겐

새로운 태양이 떴습니다!


하는 어느 소설의 엔딩처럼.



하지만 소설의 책장을 덮으면

다시 눅눅한 현실의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씻겨 내려가지 않은 통증이

여전히 내 몸의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나는

삼키기 싫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흐릿해지는 단어들을 기어코 붙잡아

오늘의 마침표를 찍는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너를 더 오래 안아주기 위해.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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