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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Feb 25. 2019

DAY 1. 어쩌면, 엄마가 될지도 몰라

드디어 두 줄을 만나다

안녕 아가 :)


항상 머릿속으로만 되뇌어보던 말을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돌아.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지만, 오늘 이렇게 네가 '까꿍, 나 여기 있어요.'하고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거든. 처음에는 얼떨떨하다가,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아침 7시 40분, 그러니까 아빠가 일어나는 시간보다 20분 일찍 침실의 불을 켜고 깜짝 놀라게 해줬어. 왕창 찡그린 얼굴로 겨우 눈을 뜨더니, 엄마가 손에 들려준 임신테스트기를 빤히 노려보더라. 그곳에 선명히 새겨진 두 줄의 선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나 봐. 정신을 차리고 'Schwanger(임신)'이라고 적힌 안내문을 보더니, 그제야 깜짝 놀라더라.


엄마랑 아빠만큼이나 너를 기다려온 가족들이랑 친구들한테 얼른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병원에 가서 한 번 더 확인을 받고 말하기로 했어. 그리고 병원 문을 여는 8시부터 바리바리 전화를 했는데, 결국 오늘은 예약이 안 되고 다음 주 화요일에 의사를 볼 수 있다지 뭐야. 사실 오늘은 너의 독일 할머니 생신이기도 하고, 주말에는 집에 오셔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오늘 결과를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아쉽지만, 실망을 드려서도 안 되니까 아직은 조심하려고. 특히 아빠는 확실한 걸 좋아하거든.


아빠랑 같이 '아직은' 아닐 수도 있다, '아직은' 위험할 수도 있다며 스스로를 다스리면서도 하루 종일 네가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보내준 메시지를 보면서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아빠도 네가 엄마 배에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비밀로 하자고서는, 출근을 할 때도, 퇴근을 할 때도 입가에 미소를 한껏 머금고 다니는 거 있지? 도대체 회사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싶더라니까.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고 곱씹으면서도, 엄마는 하루 종일 '임산부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임신 주기별 주의점' 등을 끊임없이 찾아보며 엄마가 혹시 너한테 위험한 일을 하지 않을까 벌써 조심하게 되더라.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먼저 고백할 게 있어. 이번 주에 폴란드에 있는 크라코우라는 곳으로 출장을 갔었거든. 이틀 내내 미팅을 이끌어야 하는 일정이라, 잠도 편히 못 자고 하루 종일 일도 많이 했어. 배가 고픈데 미팅이 길어져서 끼니를 놓치기도 했고, 오후에는 동료들이랑 와인도 마시고 맥주도 마셨어. 그때는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지 몰랐으니까 스스로 괜찮다고 위로하면서도, 엄마는 살짝 걱정이 돼. 그리고 얼른 너를 만나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네가 오기 전에 공부를 더 해서 앞으로 직장에서 좋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며 엄마 욕심을 먼저 내기도 했어. 그래도 아가야,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네가 지금 우리에게 와 줘서 너무 행복해. 어쩌면 매일매일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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