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글인지 모를, 담담한 상처가 담긴 편지.
나에게는 친할머니나 다름없는 큰엄마가 있다. 어릴적 어머니를 여읜 아버지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제일 큰 형님이 계셨는데, 이미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얼굴도 못 뵈었지만 내게는 사랑하는 큰엄마가 있다. 대구에 사시는 우리 큰엄마는 종종 주말마다 포항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셔서 맛있는 것도 해주시고 우리를 데리고 성당도 가주셨다. 큰엄마가 오시고 난 다음 날이며,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성모상 앞에 무릎꿇고 앉아 아침기도를 해야했지만, 그래도 나는 큰엄마가 오시는게 좋았다.
하루는 우리를 위해 파전을 굽전 큰엄마 옆에서 갓 부쳐진 전의 바삭바삭한 가장자리만 떼어내어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기름에 바싹 탄 부분을 아직도 좋아하는 나는, 큰엄마께 '이 부분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 큰엄마는 알맹이를 쏙 뺀, 밀가루만 있는 전을 서너 장이나 붙이셨다. '아, 이게 아닌데'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멀건 밀가루 전에 초장을 발라 맛있게 다 먹었다. 나는 밀가루보다 파가 더 좋은데.
우리 큰엄마가 얼마나 멋진 분이냐하면은, 없는 살림에도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남긴 시동생들과 그 식솔들까지 챙기며 그 긴 세월 맏며느리로서 온갖 제사며 명절차례를 지내셨고, 그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이며 신문이며 독서를 놓지 않으셨다. 그 덕분에 엄마와 나는 명절마다 큰엄마가 들려주시는 좋은 글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글도 잘 쓰셔서 어느 옛날 라디오에 보낸 사연이 읽힌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큰엄마가 지금이라도 다시 글을 쓰셨으면 좋겠는데, 내가 여기 저기 기고해보라 말씀을 드려도 부끄럽고 용기가 없어 이제는 못 하시겠단다.
이런 우리 큰엄마께서 내 결혼식 때, 편지를 써주셨다. 단아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보일 듯 말 듯 연필로 눌러 적은 그 편지는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은지야'라는 부분만 빼면, 결코 내게 보낸 편지라 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은지야, 축하해.
나는 세상에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야.
...
아버님을 모셔다드리고 대구로 보따리 싸들고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형제 중에 제일 불같은 성격의 아빠 밑에, 조카만 아니면 늦게 일어나 장사 준비해도 되는데, 일찍 일어나 조카 밥도 해주어야 되는데, 정신이 온전찮은 시아버님까지 받들어야 했으니 그때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엄마의 희생으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거야.
은지야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사랑해!
나는 큰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어쩌면 이 이야기가 그 시대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사연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하니까. 큰엄마는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적으셨지만, 엄마는 내게 큰엄마가 엄마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 하셨다. 어쩌면 척박한 시집살이에, 엄마처럼 글읽기를 좋아하고 힘든 순간순간마다 버팀목이 되어주신 큰엄마가 엄마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큰엄마가 다시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 평생 혼자 꽁꽁 숨겨오시던 가슴의 상처들을, 내게 쓰신 편지처럼 하나하나 다 풀어내셨으면 좋겠다. 키도 크고 건강하던 우리 큰엄마는 볼때마다 안쓰럽게 여위어 가신다. 언제나 철인처럼 보이던 우리 큰엄마는 독일에 놀러 오시라 해도, 노인이 비행기 오래 타면 위험하다며 절래절래 고개를 내 저으신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드시는 우리 큰엄마의 이야기를, 그 분의 글을 통해서라도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