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이 말을 안 들어!"

by 달리아

부엌에서 저녁을 차리는 중, 두 아이가 거실에서 놀다가 작은 선인장 화분을 엎질렀다. 첫째가 선인장에게 미안하다고 하고선 흙과 돌을 화분에 담는데, 둘째는 계속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런 둘째를 보고선 첫째가


"너는 왜 안 해?"


라고 하자, 둘째가


"내 마음이 계속 놀고 싶대."


고 얘기했다.


그 표현이 재미있어서, 내가 둘째에게


"그럼 그 마음에게 같이 해보자고 말해보는 건 어때?"


라고 하자, 둘째는 혼자 빈백에 가서 앉아


"마음아, 같이 치우자."


하며 마음에게 말을 걸더니.


"엄마, 마음이 말을 안 들어. 계속 놀고 싶대."


라고 하며 다시 내게 와 도움을 청한다.


"그럼 다시 한번 마음을 달래 보는 게 어때?"


라고 내가 얘기하니, 그제야 마음이 바뀌었다고 작은 손으로 흩어진 흙을 모은다.



아이들은 뭐든 금방 배우고, 금세 변한다.

그만큼 유연하고 말랑한 몸과 열린 감각과 마음을 지녔다.


그런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쳐주어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가꾸며, 때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말을 잘 듣지 않는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 힘을 기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쓰러졌다가 다시 세워진 화분을 보다 안전한 높은 곳으로 옮겨놓고, 뿌리를 잘 내리기를 기도하는데, 하트 모양의 선인장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안전한 환경과 믿음 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아이들은 쉬이 쓰러지거나 꺾이지 않고, 다른 존재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식물들마다 제각각 다른 물과 빛과 양분을 필요로 하듯, 다양한 아이들이 자신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돌볼 때 세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임은 틀림없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숨 쉬고, 살아있게 하는 본질임을, 어린아이일수록 온 몸으로 사랑을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느낀다.




며칠 전에는 첫째가 잠자리 누워, 동생과 엄마 품을 더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이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나는 맨날 동생한테 양보만 하는데, 동생은 나한테 양보를 안해서 속상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 아빠가


"아고, 많이 속상했겠다. 이리 와. 마음 만져줄게"


라고 하니, 아빠에게 뛰어가 안기고선, 아빠가 등을 쓰다듬고 토닥여주며


"우리 딸, 많이 속상했구나."


하니,


"헤헤, 이제 마음이 풀렸어."


라고 방실방실 웃으며 내 옆으로 돌아온다.


"마음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만지고 또 풀어?"


라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엄마 눈에는 안 보이는가보네!"


그런다.


'어이쿠!'


그렇다면


'마음을 만진다는 게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놀라거나 성난 동물들의 털처럼 거칠게 일어난 감정들을, 부드러운 손길과 마음으로 쓰다듬는 것이 아닐까.

그건, 꽉 묶여버린 마음 자리를 알아봐주고 평가나 판단없이 그를 느끼며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닐까.

머리와 언어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게 더 익숙한 아이들과 동물들은 그렇기에 더 많이 바라보고, 안아주며 눈빛과 온기를 나눠야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만져주고, 돌봐준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어린 스승님들을 모시고 살다보니, 매순간이 배움이라, 잊지않기 위해, 아이들 재우고 졸린 눈 비비며 글로 담아본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은 여러 경험들을 돌아보고 그를 되새김질하며 소화시키는 시간들이다.


이렇게 매일 아이들이 내주는 숙제들과 질문들로 내 마음도 매일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