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를 낳고, 출산의 기쁨과 경이로움 이후에 이어진 감정은 외로움과 당황스러움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첫날,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하는 4kg 남짓한 작은 생명체를 홀로 돌본다는 것에 온 몸이 긴장되었다. 육아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상상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미리 육아에 대한 책을 읽기는 했으나, 실전에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아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아이 얼굴에 비치는 실핏줄이나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하고, 조리원 동기들과 카톡을 하고, 검색을 했다. 기저귀 하나를 검색해도 634,195개의 물품들이 나오는 세상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만큼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을 찾는 것에 더해 아이가 써야 하는 만큼 안전한 제품을 사야 하니 따져보아야 할 것들도 많았다.
때때로 육아에 관련된 웹툰이나 아이의 성장발달에 대한 정보나 육아의 노하우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신랑이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적막함이 어색해서 평소에 듣지도 않던 라디오를 사서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나는 단절되고 고립된 나의 끈들을 이어주는 통로들을 찾으며 막막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었던 것 같다.
첫째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단어를 이어 말을 시작하기 시작했을 무렵, 언젠가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내게 아이가 다가와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엄마, 핸드폰 말고 나를 봐!"
아이의 그 말을 통해, 나는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찾다가 가장 중요한 연결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짜 내가 연결되어야 할 존재는 바로 내 눈앞에 숨 쉬며 살아있는 아이였다. 문득, 결혼 전 어느 여름 머물렀던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팃낙한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세 문장이 내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Darling, I am here for you."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 있음을 압니다.
And I know that you are there."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So I am happy."
실로,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다고 해서 진정으로 같이 있는 것이 아님을 나 역시 느낀 바 있었다. 함께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것들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아부을 때 느끼는 공허함은 혼자 있을 때의 허전함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아이가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위한 물건들을 사거나 아이들을 위한 것들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본다는 핑계를 댔지만, 정작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아이 앞에 있는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크게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가능한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에는 핸드폰을 보지 않거나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대신 아이를 한 번 더 바라보고자 하고, 아이들이 예쁜 모습을 보일 때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려 바로 핸드폰을 들이대기보다는 눈과 마음에 한 번 더 담고자 노력한다. 핸드폰 사용이 몸에 베이고 익숙해져서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를 알아차리고 노력하는 만큼, 아이도 나도 변화하는 게 느껴진다.
오늘도 아이들의 예쁜 두 눈을 한 번이라도 더 마주하고, 더 많이 안아주고, 따뜻한 말을 주고받으며, 두 번은 없을 매 순간, 지금 내 눈앞의 가장 큰 선물들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축복처럼, 천사처럼 하늘에서 흰 눈이 날아다니는 겨울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