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있던 4살인 아들에게 방 안에서 휴지를 좀 가져달라고 했다. 놀잇감을 가지고 놀고있던 아이는 내 두 눈을 정면으로 보더니,
"에휴, 엄마, 나 좀 시키지 좀 마.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말에 조금 놀라기도 하고, 그 말이 맞기도 해서 웃음도 나왔다.
학교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 너무 많은 것들을 시켜서 그 무게에 짓눌려 있던 아이들을 만났던 기억이 났다. 어떤 아이들은 넘치는 풍요로움과 과잉보호 속에서 오히려 무기력해져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성장이 멈춘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르치던 한 아이가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
라고 했던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가 부담스러워 무너질 것만 같다고 했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교실 안에는 마음의 상처들로 아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고민들과 사연들을 들으며 매일 울면서 학교에 다녔다. 함께 울어주는 것 말고 아이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아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보니, 아픈 아이 뒤에는 아픈 부모가, 아픈 부모 뒤에는 병든 사회가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고통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나는 학교 밖으로 나가 교사가 아닌 학생으로 다시금 배움을 구하러 다녔다.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 어딜 가도 아이들이 눈에 보였고, 자연스레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길들을 걸으며 얻은 배움으로 나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얼마 전, 누군가 내 삶의 여정이 담긴 글을 읽고선, 생명수를 구하러 간 바리데기 이야기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진실한 마음,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사랑이라는 생명수였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 나는 다시 만나는 아이들과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매일 연습한다. 학교에서 진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이, 그리고 그를 실천하는 공감이 아닐까 한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작년 교보문고에서 보게 된 방정환 선생님의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다시 찾아보았다.
-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하도록 하여 주시오
-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주시오
-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100년 전, 이처럼 깨어있는 생각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어른들에게 당부를 하신 방정환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의 나를 깨운다. 변해야 하는 건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다.
봄날의 따뜻한 비가 씨앗들을 깨우고, 곡식들을 자라나게 하고, 꽃들을 피워내듯, 세상 모든 어리고 어여쁜 어린이들에게 생명수 같은 사랑이 흘러가 웃음꽃을 피워내기를 기도한다.